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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주인장 Oct 23. 2015

산들산들

일상 하나, 음악 하나. 그 첫번째

눈을 부비적 거렸다. 안경에 먼지가 낀건가 싶어 꼬깃꼬깃한 안경닦이 수건으로 벅벅 문지르기 시작했다. 안경 문제가 아니었나보다. 작고 흐물한 실지렁이들이 투명한 형상으로 기어다녔다. 언제 마무리될지 모르는 중요한 계약건에 며칠간 잠을 설치며  잔뜩 스트레스를 받아서였을테다. 내 밥벌이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점심허기는 이기지 못해 식당을 찾아나선 발걸음이 허무하다.


내 밥벌이도 밥벌이지만 딸린 식구들이 더 걱정이다. 사무실 막내는 이따금 투덜거리기는해도 잘 이겨내왔다. 하지만 두달 정도 월급이 모자랄 수 있으며 당분간 남의 일을 해주며 살아가야할거 같다는 불안한 단도리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막내는 어제밤 저렴한 수육과 소주잔 앞에서 담담하게 속내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얼마 전 태어난 아기에게 사주고 싶었던 물건을 결국 포기했다는 이야기. 속상해하는 와이프의 토로에 할말이 없었다는 이야기. 녀석은 울었고 나는 고개를 떨궜다.


사실 막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막내다. 함께 일하던 형은 결국 일본으로 회사를 옮겼고, 그 빈자리를 묵묵히 채우던 유일한 정직원인 이 친구를, 나와 달리 이미 한 가정을 꾸리고 책임지고 살아가는 이 친구를 막내라 부르기 민망하다. 자신의 힘든 상황 속에서도 형이 힘들까봐 이런 이야기를 그동안 차마 꺼내지 못했다는 이 친구를 막내라 하기 부끄럽다.


한두달의 공백도 이겨내기 힘든 인생살이다. 얼마나 허약하고 불안한지 그동안의 발버둥이 처량하기 짝이 없다.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쓰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막내의 조심스런 통보에 별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맑고 투명한 하늘에서 꽤나 따가운 볕이 내리쬔다. 가을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왔다. 집 앞 기사식당에서 저렴하지만 든든한 우거지탕 한그릇을 먹기로 결정한다. 오늘도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낸다.




그렇게 사라져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순간도 희미해져 갔어

영원히 변하지 않는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게 어딘가 남아 있을거야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누군가의 별이 되기엔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도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피할 수 없어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멈출 수 없는 그런 나의 길

다가올 시간 속의 너는 나를 잊은 채로 살겠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게 조금은 남아있을 거야
새로운 세상으로 가면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맘처럼 쉽진 않겠지만 꼭 한번 떠나보고 싶어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많은 세월 살아왔지만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서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두렵지 않아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웃음지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네
그게 나의 길


 - 언니네이발관 '산들산들' (2008, 가장 보통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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