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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규 JELMANO Dec 29. 2017

[12월 옐마노 칼럼] 세상의 모든 완판, 평창 롱패딩

세상의 모든 완판에는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12월이 끝을 향해 들이 내칩니다.
12월은 2017년이란 동물의 콧등에 불과합니다.
상처로 여런 군데 거친 털속의 속살이 헤처진 그 동물은 막다른 골목인지도 모르고,
끝을 향해 들이 내칩니다.


이 달 초에 밀라노로 송고했던 짤막한 글을 이제야 주섬주섬 여기에 올립니다.


이 때만 해도 5월의 아이처럼 글 분위기가 밝았습니다.






손가락으로 아이폰 화면을 누르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휴대폰으로 메시지 단문이나 이모티콘을 보내는 것 외에, 이제 요 조그만기기로 적당한 길이의 산문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쓰는 시간은 모니터 위에서 키보드로 생쥐 같은 커서가 쪼로롱 달리는 것 보다는 조금 더 걸리겠지요. 하지만 책상 위에서 편히 앉아서 쓸 여건이 안되는 경우에, 진한 카푸치노 한잔과 베네치아 석양을 같이 맞으며, 살얼음 깨 먹듯 손톱 원고를 톡톡 살살 완성하는 맛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들숨 잔득한 한국에서의 짦은 호흡으로도 이런 느릿한 글쓰기를 저는 (시도) 할 수 있었을까요? 며칠 전 본 국내발 뉴스에 이런 물음이 문뜩 들었습니다.
 
그 사이 멀리 한국에서는 때 아닌 ‘평창 롱패딩’ 열풍이 휘몰아 쳤습니다.
 
처음에 이 패딩을 보아하니, 지난 90년 대 유행했던 (운동선수들이 벤치에서 몸을 데우는) 벤치파카와 다른 것이 없는 그저 투박한 상품으로 보였습니다.  올림픽 등 국제대회 등 그 때마다 되면 나와서 대회의 성공을 기원하는 애먼 시민들의 고양된 선의를 상술로 자극하는 그저 그런 관변 마케팅과 머천다이징으로 보였습니다.




               

두.둥. 평창의 추운 날씨에 대비하여 침낭으로 오인할 정도로 따뜻해 보이는 평창롱패딩. 올림픽기념 상품으로는 드물게 컬러가 무려 3종



그러나 이번에는 대형사건 이었습니다. 매체의 별다른 관심없이 슬쩍 판매를 시작한 롯데 백화점 곳곳에서부터 반응은 후기와 댓글, SNS를 타고, 불과 며칠 만에 회오리처럼 되돌아 왔습니다. 1차 패딩 물량은 웃돈을 주고도 못 사람이 장사진을 이뤘고, 2차, 3차 판매부터는 다음날 아침의 번호표를 받기 위해 그 전날 저녁부터 신문지 장판이 긴 줄로 내 깔렸습니다.




11월 30일 오늘, 롯데 백화점 소공동 본점 등 4개 점포에서 마지막 잔여 물량 3천벌이 판매되어, 결국 롯데백화점이 주문 제작한 한정판 3만벌은 일단 역사 속으로.



명분은 평창, 본질은 가성비+한정판

세상의 모든 완판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 평창롱패딩에는 ‘평창대회’라는 대의를 내세운 유통사 이면서, 공식 라이선스 업체인 롯데백화점 그리고 패딩 제조업체 신성통상이 최소한(?)의 마진으로 한정 물량의 공급을 합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 간 대규모 국제대회 경험칙을 통해, 올림픽 상품의 경우 일정수준 소비자들의 최소 구매 수량을 보장받는다는 ‘보험’까지 갖고 안정적으로 사전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이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결정적 요인은 결국 명분도, 디자인도 아닌 결국 ‘가성비’였습니다. 이 패딩이 실질적으로 ‘동급의 구스다운 100% 패딩 가격의 절반도 안’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실질적인 동급의 패딩’이란, 100% 구스 다운 + 거위 솜털과 깃털의 비율이 최소 8:2 + 필파워(Fillpower: 패딩의 복원력) 650 + 우모량(다운 페더 실 포함량) 400g을 이야기 합니다.   
 
끝으로 여기에 화룡첨정을 찍고, 오늘 ‘완판딱지’ 를 붙여 상품 전부를 하늘(소비자들에게)로 날려 보냈습니다. 바로 ‘한정판’ 이라는 날개를 그렇지 않아도 가벼운 이 평창 패딩에 붙여준 것 입니다.






사실 이러한 사회적 냄비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현상 만은 아니기에 특별히 한국의 10대 들을 비판하거나 계도하겠다는 마음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2015년에 H&M 과 발망의 리미티드 에디션 컬렉션 판매개시일, 패션, 뮤직 이벤트의 인산인해는 이탈리아 등 다른 국가에서도 가끔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만 매장 앞에서 그 전날 12시간 전부터 대기 인원이 몰려 있다거나, 이렇게 편법 사재기 된 상품이 중고상품으로 둔갑하여 신상원가의 2배에 팔리는 현상은 어딘지 불편한 모습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중간에 청소년들의 치기 어린 열정을 암표처럼 사재기하여 온라인에서 바가지 가격으로 판매하거나, 심지어 허위로 판매하는 몰지각하고, 구스다운 깃털처럼 가벼운 윤리의식을 가진 어른들의 존재가 있음을 우리는 일단 지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느긋한 호흡으로 이러한 상업적 편법 및  부당이득 취득을 방지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와 인식의 개선을 위해 다음세대들과 연대하고, 협동해 나아가야 할 것 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창롱패딩의 한정판 마케팅이 편법으로 3만장 한정수량을 걸어둔 것이 아닌, 진정성 있는 마케팅전략 인 것으로 현재까지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제조사인 신성통상의 관계자 역시 시장의 폭발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비용 그리고 자재적인 측면에서 추가생산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그치는 것일까요? 저는 이제 ‘더 이상 침낭 같은 롱패딩은 이제 그만!’을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역시 한국입니다. (혹은 롯데 여서 그런 것일까요?) - '이 괄호 속 표현, 원고에서는 오자표기로 그어진 것이지만, 아직 네이버 블로그에는 오자 표기기능이 없네요.'

No nation, No Brand 를 컨셉으로 하여, 남북평화를 기원하는 ‘평양롱패딩’이 롯데  PB  상품으로 나온답니다. 다만 평창롱패딩이 거위솜털과 깃털 비율이 8:2 인 것에 비해, 평양은 오리 솜털과 깃털이 7:3 이고, 가격은 보다 저렴한 12만원 주준이라고 합니다. 롯데는 일단 평창롱패딩과는 독립적인 기획으로 제작된 상품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0년 초, ‘국민 등골 브레이커’로 이름을 날리던 노스페이스 점퍼가 교복으로 등극했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되지 않아 더 이상 교복세계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도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던 노스페이스 점퍼가,  어르신들의  등산로, 약수터, 그리고  멀리 이탈리아 해외여행객 그룹에서 어렵잖게 젊은 오빠 잠바(?)로 재등극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내년에는 평창올림픽 1주년 롱패딩을 같은 등산로, 약수터 그리고 이 곳 베니스 선착장에서도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비단 저 뿐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2007년부터 수년간 ‘대학민국교복’ 이라고 불렸던 원조 ‘등골브레이커’ 노스페이스 눕시,

당시 25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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