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가슴이 답답했다. 한의원에 갔더니 홧병이라고. 머리로는 답답할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켠에 답답했던 일이 쌓이고 쌓였는지 그렇게 뜨거웠다. 약을 처방해주시면서, 몸에 열을 식혀야하니 수박이라도 먹으라 하셨다. 그치.. 수박 참 시원하지.
하지만 일반 집에서 수박을 한통 먹기란 쉽지 않다. 잘라서 작은 냉장고에 넣는것도 일이고, 수박껍질 잘라서 음쓰로 버리는 것도 일이고, 그렇다고 작은 애플수박은 몸을 그렇게 시원하게 해주지 않아 먹지 않느니만 못하다. 몸이 뜨겁다는데 어떻게해. 수박을 살 수 밖에. 사두고 열심히 먹었다. 수박의 수분감이 몸의 열을 식혀줬다. 답답하던 것이 많이 사그라 들었다. 하지만 입안의 단맛은 영 내키지 않았다.
올해 여름, 시작부터 겁이났다. 몸이 뜨거워진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작년에 경험하고 나서는 얼른 몸의 열을 끄기 위해서 뭘해야할지 두리번거렸는데, 올해는 오이 당첨! 꽃비원에서 탐스러운 일본 오이를 보내줬는데 쓰지도 않고 달큰하고 시원한 그 맛이 끝도 없이 들어갔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오이 특유의 향이 싫다고 하는데.. 싫어하는 사람들이 여러번 먹어서 그 맛을 정확히 알려줄리는 만무하고, 대략적으로 균형 안맞은 비릿한 맛을 싫어하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오이는 수분이 많은 채소라서 영양소가 '충분히' '골고루' 들어있어야 빈맛이 안느껴지고, 너무 수분이 부족하면 오이가 써져서 아예먹을 수가 없다. 못 먹는건, 맛있는 것을 안먹어서 봐서 라고 믿는 자로써. 잘 키운 오이 진짜 맛있는데 말이지.
이번 여름의 기후가 오이에게 좋았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유독 오이가 맛있었다. 맛있는 오이를 무슨 요리를 해 그냥 먹는게 최고다. 썰어서 소금에 찍고, 쌈장에 찍고, 오로라소스(케찹+마요네즈)에 찍고...오이가 끝도 없이 들어간다. 때론 오이를 채썰어서 절여서 콩국수위에 얹어먹기도 하고, 오이를 부셔서 소금 참기름 식초에 무쳐 먹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역시 오이를 아그작 씹어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한다.
달디단 수박보다는 오이가 좋았다.
이 여름 오이 덕분에 시원했다.
모두가 작년보다 더 덥다고 한 올해의 더위는, 저녁마다 아그작 씹어먹은 오이 덕분에 견디었다.
곧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