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자기 호박잎 좋아하는데 왜 호박잎 안해주냐고 한다. 호오.. 호박잎을 좋아했다고? 그랬구나. 매년 여름 호박잎 먹고싶다는 이야기 하기도 전에 호박잎을 쪄서 그랬나 호박잎 좋아하는 줄 몰랐네... 올해는 마음에 드는 호박잎을 만나지 못해 '호박잎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을때까지 호박잎을 먹지 못했다.
적당한 호박잎이 없었다. 호박잎도 모든 호박잎이 되는게 아니라 어느정도 컷지만 보드라운 호박잎이어야 맛이 있다. 여리다고 해서 자라고 있는 넝쿨부분을 따면 어려서 열에 쉽게 익는데, 익어버린건 찌면 비리고 느글해진다. 익지 않았다고 해도 너무 어린건 푸릇한 호박맛이 별로 나지 않는다. 자란지 좀 된것은 거칠어서 아무리 쎈불에 쪄도 물러지지 않고 입안에서 거칠다. 그래서 항상 적당한 상태의 호박잎이 중요하다.
이번엔 희안하게 적당히 거칠고 보드라운 호박잎을 만날수가 없었다. 한살림의 호박잎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단호박잎같았다. 잎이 매끄럽고 작은게 단호박 잎이다. 사람들은 작고 보드랍고 잔털이 없어서 단호박잎도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사서 먹어보기 가볍디 가벼운 풋내가 날뿐, 묵직한 호박잎향이 하나도 없다.
오랜만에 마르쉐에 갔는데 마콩농장의 호박잎이 보드랍고 탐스러워 보였다. 얼른 주워들었다. 남편 기다려 호박잎이 간다! 호박잎을 보통 줄기껍질을 까는데, 마콩농장의 호박잎은 그런 손질을 하지 않아도 될정도로 보드라웠다. 보통 호박잎은 찌는데, 찜기까지 꺼내기가 번거로워서 밑에 물을 깔고 위에 얼기설기 호박잎을 올렸다.
삶든, 찌든 각각의 장단이 있다. 삶으면 호박잎의 맛이 빠지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그 빠지는 맛중에 독한맛이 빠져 순한맛이 된다. 찌면 호박잎의 맛이 더 보존이 되어 좋은 것 같지만, 수분감이 부족해 버석한 느낌도 든다. 적당히 촉촉해야 먹기도 편하다. 각자의 입에 맞는 방식, 편한 방식으로 선택하면 될일이다.
김이 오르고 어느 정도 익었겠다 싶을 때 상태를 본다고 뚜껑을 연다. 와.. 이 바다의 향은 뭔가! 호박잎을 찌는데 찌인한 조개의 향이 올라온다. 그래서 호박, 호박잎이랑 조갯살을 잘 매칭해 먹는걸까? 바닷가에서 자란 호박과 내륙에서 자란 호박은 다를까? 호박은 종종 새우랑 먹는데, 조개맛이 나는 호박잎보다 달아서 새우랑 먹는게 좋은가? .... 호박잎에서 나는 바다의 향에 갖은 질문이 쏟아진다. 챗 GPT한테 물어봐야지.
풀을 익힐 때 종종 바다의 향이 난다. 봄에 내내 나물 삶을 때도 그랬다.
해조류를 익힐때는 종종 풀의 향이 난다. 미역과 다시마의 짠맛이 빠지면 풀향이 솔솔난다.
땅은 예전에 바닷속에 있었다는데, 지금은 땅과 바다를 구분짓지만, 결국 땅의 것이 흘러가 바다로 가는거 아닌가...바다의 것도, 땅의 것도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