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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금으로 맛을 낸다

by 부암댁

배고프다. 밖에 나가서 먹기는 싫고. 냉장고를 연다. 여름이다보니 호박, 쥬키니, 가지가 잔뜩 채우고 있다. 해치울요량으로 끄집어 내 도마위에 올려둔다. 그냥 어울리는 색, 예쁜 색을 고른다. 양파, 노란쥬키니, 풋호박, 가지, 새송이.. 아! 빨간색이 필요해. 선반에 뒀던 토마토 두개도.


여름 채소들이라 얇게 썰면 물러질것 같아 깍둑썰기로 썬다. 딱딱하지 않아서 금방 썬다. 가지와 호박은 살짝 절인다. 여름 채소들은 수분이 많아서 익히면서 물러지기 쉬우므로 소금을 뿌려 수분을 좀 빼둔다. 그렇게 손질해둔 야채를 옆에 잔뜩 쌓아두고는, 볶기 시작한다. 기름을 두르고 열이 오르면,


야채 하나하나 소금으로 맛을 낸다.


맨먼저 양파를 넣는다. 촤아 하고 소리는 나지만, 그 소리가 격하지 않을 정도로 중약불에 불을 두고는 양파에 소금을 적당히 뿌린다. 내가 내고 싶은 맛 만큼 소금을 뿌린다. 맛을 진하게 내고 싶으면 소금을 좀 더 넉넉히. 하지만 가벼운 여름 볶음이 하고 싶으니까 평소보다 적게. 양파의 익힘 정도는 눈, 코, 입 모두 활용해 확인한다. 투명하게 익되 물러져서는 아니되고, 날내 없이 다 익어 가벼운 단향이 나야하고, 입에 넣어 그 맛이 잘 났는지 확인이 되면 다음을 넣는다.


다음은 쥬키니와 풋호박. 토마토나 가지보다도 익어 단향이 나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더 단단하므로, 양파 다음으로 넣는다. 역시 또 소금을 뿌린다. 소금으로 양파와의 맛을 연결하고, 호박의 비릿한 맛을 잡고 풋내 밑에 있던 단맛이 드러내게 한다.


다음으로는 가지. 마음같아서는 따로 익혀 넣는 것이 훨씬 더 맛있겠지마는, 그런 번거로움을 하다가는 질릴것 같아 그냥 같이 넣어 볶는다. 가지의 단향이 또렷해질만큼의 소금을 넣고 볶는다. 볶음 주걱으로 휘적이지 않는다. 야채 아래부분이 찜쪄진다 싶으면 한번씩 후라이팬을 둘러 뒤집어줘야 재료가 물러지지 않는다. 가지를 입에 넣어 가지가 충분히 익었다 싶으면 다음 토마토를 넣는다.


토마토를 넣고 또 역시 소금을 뿌린다. 가벼운 토마토 퓨레 느낌으로 하고싶으면 소금을 조금, 진하고 찐득하고 토마토의 맛을 느끼고 싶으면 소금을 넉넉히. 역시 또 가벼운 여름채소 볶음이니까 적당히 넣고 볶는다. 오래 볶을 필요없다. 토마토가 살짝만 익으면 된다.


완성.


빵에 얹어 먹어도 좋고, 파스타 위에 쏟아 먹어도 좋고, 그냥 야채 아래 기름만 닦아 먹어도 너무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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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요리에는 소금 이외에 필요한 조미료는 없다. 모든 조미료들이 결국 식재료에 소금과 시간이 더해져 감칠맛이 응축되어있는 것들이라. 결국 본질적인 음식의 조미료는 소금이다.


소금은 식재료에서 날아가는 향에 힘을 달아주어 맛으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하고, 흐리멍텅하게 보인 맛을 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게 구분을 지어주기도 하고, 서로 다른 재료의 맛과 향을 연결시켜준다.


소스는 필요없다. 소금이면 서로가 서로의 소스가 되어준다.


재료의 맛을 감각하고, 소금만 다룰줄 알면 다른게 필요가 없다. 부엌한켠을 가득채우는 온갖 소스들이 필요없어진다. 뭣보다 재료가 오롯이 느껴진다. 가공조미료든 천연조미료든 조미료가 없으면 맛을 못낼까 불안할지 모르겠지만. 믿어봐요. 소스보다 소금을.


괜히 빛과 소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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