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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감자

by 부암댁

어릴 때는 삶은 감자가 맛있었던 적이 없다. 뭔가 느글느글하달까? 설탕을 찍어도 소금을 찍어도 느글느글한 맛이 대체 해결되지 않았다. 뭔가를 좀 알게된 지금,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감자의 과한 감칠맛을 압력밥솥으로 더 응축시켜서 쪄내다보니 감칠맛이 더 뭉쳐서 그러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감칠맛은 적당한 소금과 만나서 입에 착 감기는 감동스러운 맛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소금 없이 감칠맛만 많으면 비릿하고 느글느글한.. 미원 맛이 된다.(실제 미원은 감칠맛 덩어리. 소금이랑 같이 써야해요.)


우리가 감자를 탄수화물 덩어리라고 알고 있지만, 그렇게 탄수화물 덩어리라면 단맛이 무진장 느껴져야하는건데... 감자의 맛을 유심히 보면 단맛보다도 감칠맛이 훠얼씬 강하다. 감칠맛 성분은 기본적으로 아미노산인데, 그러한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가지고 있는 귀한 작물이 감자다. 감자는 감칠맛 재료라니까!


기본적으로는 감자가 감칠맛이 높지만, 품종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속이 노란 홍감자는 사실 감칠맛이 많기보다 단맛이 훨씬 많다. 감칠맛이 높은 감자는 속이 하얀 감자다. 이렇게 감칠맛이 높은 하얀 감자를 삶으면 닭고기 삶는 냄새가 난다. 삶은 물을 떠먹어보면 '감칠맛 미쳤다'하고 감동하게 된다. 감자탕은 고기때문이 아니라 감자가 맛을 다 내는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그렇게 맛을 많이 낸다. 이 감칠맛에 뭘 더 넣어.. 이미 '완전'한데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감칠맛이 높은 감자는 여름에도 나오지만 겨울에도 나온다. 겨울에는 주로 제주도에서 감자가 나는데, 여름감자와 다르게 크리미한 맛이 더 강해진다. 겨울에 감자를 삶고는 '와.. 이 크리미함은 크림 안넣고도 매쉬드 포테이토를 만들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를 삶아 으깨서 버터넣고 생크림넣고 해서 리치 하게 만드는게 아니라, 매쉬드 포테이토를 온전히 감자로만 만든다. 감자와 소금을 넣고 푸욱 삶고, 불을 끄고 좀 두었다가 감자가 물을 한껏 먹으면 그때 물을 버리고 수저로 으깨준다. 'creamy!' 매쉬드 포테이토에 왜 크림을 넣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감자에서 이미 크리미한 맛과 향이 나니까, 되도록 그 맛을 방해하지 않거나 증폭하기 위해서 크림을 넣었던게 아닐까 싶다.


뭐든 넣는 것에 대해서는 왜 넣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단하나의 이유로 넣지 않겠지만, 인과관계 없이 아무거나 넣지 않는다. 매쉬드 포테이토는 감자와 소금. 이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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