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진짜 오크라 많이 먹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특수 채소 같은 느낌이었는데, 요 몇년 사이 엄청 흔한 채소가 되어 버렸다. 이런 '별'스러운 작물을 처음 만난건 일본에서 였다. 편의점에 네바네바 샐러드에 얹어있는 별모양의 식재료. 얇게 혹은 다져서 조금씩만 들어있는 것만 먹었던데다가, 일본에 있을 때(2016년 즈음)만해도 슈퍼에도 잘 팔지 않았고, 판다고 해도 4-5개씩만 포장해서 팔았기 때문에 오크라는 그렇게 많이 먹는 작물이 아니라 샐러드에서처럼 조금씩만 먹는 식재료인가 했다.
그런 오크라의 끈적함과 별모양의 모습은 무척 매력적이었고, 한국에서도 먹고 싶어서 계속 두리번 거렸는데 잘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씨앗을 사다가 심었다. 먹고싶은자가 우물을 파는것 아니.. 심는 것. 심어놓고 나오지 않아서 이건 역시 일본 땅에서만 나는건가? 했는데, 상추보다는 조금 늦게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잎 뒷면에 진딧물이 가득.. '이거 살겠나?' 싶었지만 하나하나 닦아주고 하다보니 어느새 큰 잎을 드리웠다.
'아니... 이게 이렇게 큰거였어? 화분 너무 작은데?'
여리디여렸던 오크라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는데... 내가 먹을줄 만 알았지, 식물이 얼만큼 커서 어떻게 달리는지 하나도 모르다보니, 나름 벌려 심었다고 했는데도 화분이 많이 작았다. 그럼에도 오크라는 '화분따위 나의 성장을 막을 수 없지' 하며 커졌다. 그러더니 어느날 가지 사이에 돌돌말린 예쁜 꽃이 달렸다. 오크라 꽃이 이런거였어?
꽃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지나가자면, 오크라 꽃을 보면, 접시꽃도 생각나고 무궁화꽃이랑도 비슷한것 같고 금화규와도 비슷한것 같은데, 이 세 작물은 오크라와 같은 아욱과이다. 아욱과는 넓은 잎을 드리우고 꽃이 말리면서 피고 꽃잎을 5장 가지고 있다. 특히 아욱과의 대표작물은 목화인데, 목화 씨앗이 터지기 전에 보면 오크라 열매와 비슷하다. (신기해서 끄작끄작)
암튼 그 꽃이 지고 나면 고추처럼 생긴애가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간다. 이 오크라는 수확시점이 중요한데, 너무 어린것보다는 그래도 모양새가 확실히 생겨야 오크라 특유의 맛이 나고, 그렇다고 시점이 지나가면 오크라 씨앗이 영글기 시작하면서 그 씨앗이 먹기 불편할정도로 텁텁해지고, 오크라의 겉 모양알 잡는 섬유질이 질겨지게 된다.
그렇게 오크라를 심고 화분생활을 정리하고 한 2-3년 지나니 농부님들이 마르쉐에 오크라를 가지고 나오기 시작하셨다. 그땐 아무래도 오크라라는 작물을 잘 모르셔서 그랬는지 너무 큰것, 너무 작은 것을 따오시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래도 알맞은 상태의 오크라를 자주만난다.
오크라는 작은빛농원에서 주로 사먹는데, 동남아작물을 잘 키우신다. 농부님께서 어린시절 베트남에 사셔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종묘회사 다니셔서 그런것도 같고? 암튼! 작은빛 농원에서 주문하면 최소 1키로 단위부터 시켜야하니까 부담스럽기는 한데, 또 희안하게 여름이 점점 습해지면서 오크라가 많이 땡기기도 한다.
작년 일이다. 작년에서 습해서 허덕허덕하고 있는데, 몸에 기름이 쫙 빠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 몸이 가지 속 같은 스펀지처럼 된 느낌이랄까. 피부가 건조한게 아니라 몸 속에 세포 사이의 습들이 빠진 느낌. 습하니까 몸도 습하면 몸이 상하니까 몸은 본능적으로 몸안의 수분과 기름을 털어낸건지 모르겠지만, 와.. 정말 몸이 바짝마른 느낌! (살이 빠진거 아니고...) 왜 였는지, 그때 갑자기 오크라가 무진장 땡겼다.
'오? 몸이 건조해서 미끈한게 땡기는건가? '
그러면서 오크라를 주문해서 매일 먹었다. 데쳐서 간장1+식초1로 한 초간장에 버무려(?)먹었는데, 진짜 앉은자리에서 7개는 거뜬히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식욕과 입맛을 채우니 희안하게도 몸이 건조해서 불편하게 느껴지던 느낌도 사라지고, 거칠어서 삐걱거리던 것이 부드러워졌다. 호오.. 신기하다.
오크라는 아프리카 원산지로 아프리카에서는 오크라를 말렸다가 수프에 넣어서 끓여 먹기도 한다는데, 습하고 더워서 몸에 기름?진기? 빠지는 느낌에 꼭 채워줘야 할 음식인지도 모르겠다.
작년 여름엔 습하고 더워 죽는 줄 알았는데(진짜로), 올해는 사실 난 뜨겁진 않았다. 습해서 더 덥게 느껴진 것일뿐. 올해도 또 습하다고? 역시 또 오크라를 줄기차게 먹어야겠군! 하고 이미 마음을 먹었었던지라! 오크라를 많이 사두곤 내 몸에도 많이 채웠고, 사람들에게도 오크라를 많이 내었다.
"오크라가 이렇게 맛있는 맛이었나요?" "네>_<"
오크라는.. 여러 방법으로 먹을 수 있겠지만, 난 데쳐서 먹는게 제일 맛있다고 생각한다. 찜이나 구이는 수분이 좀 날라가는데, 데쳐야 그 수분이 유지되면서 촉촉한 맛이 나니까!
뭐든 그렇지만, 같은 걸 데쳐도 데침의 방법에 따라 맛이 크게 다르다.
팔팔 끓는 물 말고, 뭉근한 물에 천천히 익혀주면
물러질 일도 안 익을 일도 없다.
물이 팔팔 끓으면 오크라를 넣고 불을 약불로 줄인다. 젓가락으로 오크라를 툭툭치면 핑그르르 도는데, 이리저리 돌려가며 골고루 열을 받도록 한다. 쎈불로 계속 놔두면 오크라 겉면이 물러져 버리는데, 뭉근히 두면 그렇게 빨리 물러지지 않는다. 겉이 익었다고 방심하면 안되고, 안에 있는 씨앗까지도 충분히 익어야 함으로 중간중간 오크라를 꺼내 살짝 눌러본다. 손으로 눌렀을때 살캉 하면 된다.
살캉했을때 오크라를 꺼내서 아주 찬물에 빨리 열을 빼준다. 때로는 그냥 그대로 식히기도 하는데, 좀더 식감이 탱글하고 맛이 선명하게 나게 하려면 찬물에 열을 빼주는 편이 좋다. 그렇게 데치면 씹을 때마다 오크라 에서 단맛이 난다.
모든 재료는 '잘' 익으면 단맛이 난다.
설탕좀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