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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추

by 부암댁

여름이면, 가지과 채소다. 감자, 토마토, 가지, 고추로 대표되는 채소군단. 여름에 이 채소들 없으면 어떻게 살아. 감자만 먹기도 하고, 토마토만 먹기도 하고, 가지 토마토, 감자 고추 이렇게 섞어서도 먹고, 이렇게 한참 먹다보면 여름이 가있다. 가지과 채소는 요리할 때, 사실 특별이 양념을 할것도 없는게, 가지과 채소는 '단 감칠맛'이 강점이다. 토마토, 감자, 가지 모두 그러하다.


감자, 토마토, 가지에 소금만 쳐도 그냥 너무 맛있다. (제발..정말 양념 넣지말고 소금만 넣어보세요)


물론 고추도! 이 단 감칠맛이 강점이다. 응? 고추가 무슨 단감칠맛이야? 하고 싶겠지만, 고추의 친척인 파프리카를 생각해보자. 생으로 먹으면 너무 달고, 익혀먹으면 감칠맛 폭발이다. 그럼 고추도 그렇지 않겠어? 고추에 그런 맛이 있나? 싶겠지만...맵다, 안맵다에 가려진 맛을 느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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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는 아삭이 고추, 풋고추, 청양고추 이렇게 매운 정도로 3가지로만 구분한다. 하지만, 한동안 내가 만났던 토종고추들은 맵기로 구분이 되지 않았다. 죄다 맵다. 다만, 향이 달랐다. 어떤건 좋은 향이고, 어떤건 안좋은 향이고 그런게 아니라, 그냥 다른 종류의 향이었다. 아.. 토종고추들은 맵기가 아니라 향이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해 두해 지나가면서 온갖 토종고추의 푸릇한 풋고추 상태부터 익은 홍고추, 말린 건고추, 고춧가루까지 만나보니. 매운맛 뒤에 가려진 단맛과 감칠맛이 보였다. 특히 고춧가루를 만나고 나서야 그 진가를 제대로 알았다. 아니 정확히는 양념이란 것에 대해서 제대로 뜯어 살펴보고서야 고추가루의 단맛과 감칠맛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보통 양념장을 만들때 그냥 레시피대로 간장 혹은 액젓, 매실액, 다진마늘, 고추장, 고춧가루 이렇게 넣으니까 고춧가루가 그렇게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각각의 요소가 왜 필요하지? 왜 넣지? 얼만큼이 적당량이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뺄 수 있는데까지 다 빼보고 나니, 실제로 필요한건 소금말고는 없었다. 그렇게 다 뺀상태에서 다시 양념을 하나씩 쌓아가 봤다. 하나씩 넣을때마다 얼만큼 맛이 변하는지 봤는데, 그때 소금물+고춧가루 만 했는데... 응? 이미 맛있잖아!


'어? 그 많은 양념 필요없었던거야? 고춧가루 하나만으로 이렇게 감칠맛을 다 커버하는거야?'


너무 놀라웠다. 지금까지 그 많은 양념비법들 뭐야. 마치 뭐라도 만들어낸것처럼 이야기 해놓곤! 비밀은 소금물에 제대로된 고춧가루면 끝나는건가? 다른 고춧가루들도 살펴봤다. 확실히 고추 종류에 따라서 단 감칠맛이 가벼운것, 무거운것 단맛이 좀 덜한 것이 있었고, 보통 과피가 두꺼운 것들이 단감칠맛이 좋았다. 할머니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 이유가 있어.


아무래도 고추는 매운맛이 가장 중심이되다보니 단맛이 더 퍼지는 것들이 주로 선호도가 높았고, 그래서 토종고추중에서는 수비초, 음성재래, 칠성초 같은 것을 많이 심는 것 같다. 개량종도 아무래도 과피가 두꺼운 쪽으로 더 심는것 같다. 가끔보면.. 저건 트리벨로 파프리카 아니야? 할정도로 큰 개량고추도 있긴 하다.


알맞은 고추를 잘 재배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잘 말려서 고춧가루를 내는 것도 맛을 내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잘 말리는 것'자체가 아주 중요한 '요리' 아닌가? 유독 맛있는 고춧가루를 만드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추를 말릴 때 온도를 세심하게 관리 하신다. 너무 높은 온도의 온풍으로 말리면 고추가 맛이없다. 어떤 분은 말릴때 약간 숙성느낌으로 고추를 뒀다가 말리는 분도 계셨다. 이 과정은 다 '단감칠맛'이 잘 표현되도록 하는 방법들이다.


역시, 진정한 고추의 맛은

매운맛 아래의 단맛과 감칠맛이다.


요즘 한국 음식중에 안빨간게 없다. 한동안 우리 음식이 빨간것만 있어? 하면서 열받았었는데, 고춧가루의 맛을 보고는 그래 우리처럼 이렇게 맛있는 빨간맛 내는 나라가 있어? 하면서 빨간맛에 자부심을 갖기로 했다. (물론 바깥에서 파는 캡사이신 가루에 물엿에 버무려진 그런 빨간색 이야기 하는거 아니다. 그런 빨간색 촌스러) 임진왜란 이후에 한국에 들어온 고추가 짧은 시간동안 한국을 평정하고 세계를 평정하게 된것은 다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만 유독 달고 맛있는 고추가 나기 때문이다.


꼭 빨갛게 안먹어도 좋다. 오래 끓여서 매운맛을 살짝 날려서 오래 조려서 먹어도 맛있다. 경상도 쪽에 고추 다짐장 같은것은 정말 여름에 별미 음식이다. 감칠맛을 더 더하려 양파와 이것저것넣어서 고추 다진것과 조려서 먹어도 맛있지만, 사실 장조림에 있는 꽈리고추도 조리면 맛있잖아!


늦여름, 푸른 고추들이 주렁주렁 달리고 고추들이 빨갛게 익는다.

매운맛 뒤로 감쳐진 고추의 단감칠맛을 충분히 즐기며 이 계절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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