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으로 오는 길에 차 안에서 갑자기 하수구 냄새가 났다. 차안을 두리번 거렸지만, 냄새날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상할 것이 없는데.. 하고 지도를 켜보니 하수처리장을 지나는 중이었다. 집에서 설거지를 하며 샤워를 하며 흘려보낸 물 뒤에 미끈한 덩어리들이 생각나며 하수처리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보이지 않는 하수처리장이 궁금해졌다.
일요일. 쓰레기 버리는 날이다. 급하게 돌아와 집에 모아둔 쓰레기를 내다 버린다. 박스테이프는 다 뗏는지 한번 더 확인한다. 저번에 쓰레기 버리는데 미화원 선생님께서 ‘다 배웠을텐데…’ 하는 말을 듣고는 찔려서 더더욱 신경써서 체크하는 편이지만, 쓰레기 버리는 곳에 가면 이걸 어떻게 가져가.. 싶을 정도로 이미 난장판이다. 박스만도 이런데 다른 쓰레기는 어쩌랴. 어두운 밤에 보이지 않게 움직이시는 미화원 선생님들의 하루가 궁금해졌다.
오랜만에 고기를 몽창 먹었다. 숙성기술이 좋다고 하고 다들 너무 맛있다고들 하길래 그래, 한번은 먹어보자 싶어 먹으러 갔다. 아침에 고기를? 싶을 정도로 이른 시간이었는데 대기 17번. 많은 사람들이 고깃집 앞에 서있었다. 잔뜩 쌓인 고기를 보면서, 이 많은 양을 어디서 도축하는 걸까. 보이지 않는 도축장이 궁금해졌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너무 피곤하고 불편한 일인데,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궁금해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것은 지난 여름의 일이다. 양산에 갔다가 렌트카를 반납하러 경주로 다시 돌아오는데 해변길을 따라 올라가보자 싶어 기장 울산 쪽으로 길을 틀었다. 지도를 켜고 최대한 바다 가까운 길 쪽으로 갔다. 아름다운 해변길을 보며 텐트를 치고 여유를 부리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고리원전. 휑한 풍경, 모래바람, 압도적인 크기, 삼엄한 경비… 그런데 그 가까이에 보이는 작은 슈퍼마켓.
원전을 정치뉴스에서나 봤고, 효율을 생각하면 원전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살벌한 규모를 보고는 단번에 반성부터 들었다. ‘아, 이건 아니다’ 전기를 쓰기 위해 어느 한 곳은 이렇게 살벌해졌고, 그런데 이곳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구나 하니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렇게 심난한지 머지 않아 갑자기 마주한 울산. 규모가 압도적인 공업단지가 보였다. 일본에서는 이런 공장들에 조명을 예쁘게 해서 관광상품을 하던데~ 하는데 굴뚝이 막 보이면서 갑자기 화학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책에서 배울땐 냄새 이야기는 없었는데.. 산업발전과 경제 성장이란 단어만 배웠는데… 그 반대편의 아파트 단지를 보면서 또 머리가 복잡해졌다.
편하게 전기와 화학제품을 쓰면서 단 한번도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책에서 볼때도 이렇게 큰 규모라고는 생각지 못했고 그 곳에 삶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으니 알 생각도, 불편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 과정에 blank가 된 곳이 있고, 그 곳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다 보이지 않게 되었나… 생각해보는 일은 꽤나 불편한 일이다. 내 무지에 의해 행한 행동을 반성해야하고, 누군가의 희생이 생각나 마음이 무거워지고, 또 알게 된 이상 마음의 불편이든 생활의 불편이든 감내해야하는 일이라서.
그냥 모르고 살까?도 싶었지만, 그러기엔 세상은 퍽 즐거운 곳이라서 불편한 것을 마주하고 좀 더 즐거움을 찾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자꾸 옛날을 들춰본다. 내가, 내가 쓰는 물건이,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가는지 다 보였던 그 옛날이야기에 내가 더 즐거워질 방법이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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