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런 맛.
오늘 한의원에 다녀왔다. 한의사 선생님이 생태치유 그루 원장님이시기도 해서 생태와 맛을 느껴보시라고 갈때면 종종 식재료를 챙겨가는데, 선생님은 그렇게까지 맛을 음미하시며 드시는 것 같진 않고� 간호사 선생님께서 가끔 코멘트를 해주시는데….
“저번에 받은 브로콜리가 � 정말 맛이 다르더라고요! 브로콜리 맛을 싫어하는데 건강에 좋다니까 아주 가끔 사서 억지로 먹었는데, 주신 브로콜리는 정~말 맛있었어요! 왜 주신건 다 맛이 좋아요?” 라신다. 아이 그야… 맛난것을 골라가니까…�
브로콜리라고 다 같은 브로콜리가 아니다. 맛이 천차만별이다. 겉으로 보기에 쌩쌩해보여도 비린맛이 나는 것도 있고, 무슨 맛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목에 콱멕혀 내려가지 않는 것도 있다. 나도 브로콜리를 싫어하는 줄알았는데, 제대로 키워진 브로콜리를 먹고는 아.. 브로콜리…맛있구나� 했다.
이번 겨울에 제대로 맛본게 몇있다. 고깔양배추와 사보이양배추. 이게 모양때문에 먹나 할정도로 맛있다는 인상이 없었는데, 이번에 @elder627 농부님께 받은 고깔과 사보이는 아.. 얘네가 이래서 먹는구나 했다. 역시 그렇지? 인간이 모양만으로 키워 먹을리가 없어. 맛이 이렇다면 납득. �
난 당근�의 화장품향 흙향 같은 부정적인 풍미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잘 먹는 편인데 김슨생은 “내가 말이 아닌데 왜 당근을 먹어야해? ”라며…당근거부… 하지만 이번 제주도 김형표농부님께 받은 당근은 “당근이…맛있네?“라며 마요네즈도 안찍고 당근을 오독오독 씹어먹는다. 희안한지고…�
주변 지인이나 공간에서도 이런 경험을 종종한다.
토마토 잘 안먹고 종종 뱉어내던 아가가 매봉 토마토는 덥썩덥썩 잘 먹는다던가, 집에선 밥 잘 안먹는다던 애가 내가 한 밥은 계속 받아먹는다던가, 시금치가 이렇게 다냐며 몇번이고 리필해 먹거나, 저 감자 싫어해요 하면서 공간에서 진행한 감자 워크샵 신청해가지고 난감했는데, 끝엔 나 감자 좋아했네? 하고 가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편식은 못먹고 안먹는게 아니라 이상한걸 먹은 기억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인간의 감각은 생각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특히 맛없는 것을 골라내는 것에 대해서는 더 확실하다. 생존이니까�
재료도 명확하다. 자기가 자란 환경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재료가 자랄때 재료 저마다가 좋아하는 환경이 있는데, 아닌 환경에 억지로 심는다던가 아니면 땅을 이해하지 못하고 양분과 수분 균형을 맞춰주지 못한다던가 하면 재료는 비리거나 쓰거나 아리맛으로 그 불균형을 힘껏 내보인다.
자연재배농법 배우신다고 키워 가져다 주신 상추는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썼는데(아마 땅이 안만들어진 상태에서 물안주고 키워서?), 물 충분히 줘 잘키운 상추는 단맛뒤에 기분좋은 쌉싸름한 맛이 스친다. 미나리도 물을 충분히 먹고 자란 미나리는 아삭하고 달큰한데, 음지에서 자란 미나리는 비린맛이 돌고, 양지에서 자란 미나리는 쓰고 질기다. 여름 파프리카는 좀 물비린맛이 비치는데, 겨울 파프리카는 어지러울 정도로 달다.
재료는 이렇게 고스란히 맛으로 보여주니, 균형을 가진 재료는 어떠한 모양이며, 어떠한 향과 맛을 가지는지 보고 맡고 먹으며 경험을 쌓아 제대로 재료만 고를 줄 알면, 매일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요리 못해도 됨. 재료가 좋으면 생으로 먹어도 맛나고 소금 안쳐도 맛나다. 하지만 잘 익히면 까무러침�
특히 재료 그 자체가 맛이되는 차, 커피, 술, 발효음식은 얄짤없이 재료가 전부다. 재료가 힘이 없으니 자꾸 뭘 넣는다… 그러나 소용없다. 자연이 만드는 맛과 향을 만들기엔 인간은 아직 자연의 매커니즘을 1%도 이해하고 있지 않다.
자꾸 재료의 원래의 맛을 알려는 노력을 했음 좋겠다. 그냥 그것만으로 세상이 재미있어지고, 식생활이 만족스러워진다. 재료가 잘 키워지면 내는 원래의 맛. 재료가 잘 다뤄지면 내는 원래의 맛. 그 맛은 왠만하면 사람의 취향을 타지 않는다. 먹어보면 그냥 납득된다. 원래 이맛이어야 했구나 하고. 그리고 놀란다. 자연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맛과 향을 만들어내는구나 하고.
202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