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애매한 달이다. 1월처럼 1년의 시작도 아닌, 12월처럼 1년의 마지막도 아닌 공휴일도 명절도 없는 그저 그런 특색 없는 달. 그리고 우리에게는 수능이 있는 달이다.
유독 추웠던 수능날 (그러고 보니 요즘은 수능 한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따뜻하다.) 집에 돌아와 가채점을 했다. 내가 쏟았던 6년의 노력과 시간, 그럼에도 더 열심히 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후회의 감정이 나를 휘감기 시작했다. 수능이 끝났다는 홀가분함은 미처 누리지도 못한 채 찾아온 좌절감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게 엄마 아빠의 얼굴은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애처 괜찮다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안 넘어가는 밥을 꾸역꾸역 씹어 삼켰다. 아무도 나에게 섣불리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최택 6단은 신입 바둑기사에게 패하고 돌아왔다. 18살의 나이의 최택에게 사람들이 거는 기대는 상상 이상이었고 그 짐은 무서웠다. 사람들은 위로를 한다고 한 마디씩 건넨다. 비록 그 위로가 진짜 위로가 되진 못했지만. 그리고 그 나이에 그의 답답한 속과 마음을 뻥 뚫리게 해주는 건 ‘바둑천재’ 최택이 아닌 한명의 친구로 봐주는 친구들의 애정 어린 욕(?)이었다.
나에게도 그랬다. 19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겪는 입시지만 그 순간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나의 실패가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으로 몇 배가 되어서 돌아왔던 날. 맞다. 그날은 아픈 날이었다. 그리고 싸이월드 쪽지에 선배가 보내놓은 글을 봤다.
설령 네가 실패하더라도
널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떠나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돼
마음이 텅 비어버렸다고 느껴도
슬퍼하지 않아도 돼
네가 만약 실패한다면
넌 끝까지 네 곁에 남아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알게되고
마음이 텅 비었을때는
네 마음 채워줄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을테니까
너는 잘 하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도 잘 할꺼야
힘내
11월 16일,
늦은 오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렇게 따뜻한 겨울 밤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자
.
한때는 같은 꿈을 꾸었던 그에게 받은 위로는 그 누구의 위로보다 고마웠다.
19살, 고민이 많던 나에게 23살이었던 선배가 했던 말 한마디, 십 년이 지나 29살을 앞두고 있는 나는 이제 그 글을 써줬던 그보다도 더 커버렸는데 여전히 난 그의 글에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비록 꿈과 조금 멀어진 지금, 그의 말이 그때보다는 조금 아린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