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도 위로가 필요해
지난 월요일 브런치가 맺어준 또 하나의 소중한 인연으로 현대백화점에 부모교육 강의를 다녀왔다.
3개월 전에 제안을 받았지만 책 출간에 매진하느라 일정을 연기했고, 그 사이 백화점 담당자가 바뀌며 강의는 살짝 잊혀진 상태였다. 우여곡절 끝에 적은 수강인원으로나마 강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고, 긴장된 마음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엄마, 아빠에게도 위로가 필요해'라는 타이틀에 책 내용을 토대로 살을 붙여 자료를 만들었다. 재밌고 감동적이었던 드라마 속 부모-자녀의 모습을 클립 영상으로 준비했고, 언젠가 읽고 마음의 위로를 얻었던 한강 작가의 시 '괜찮아'도 수록했다.
강의할 내용을 정리할수록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고, 그럼에도 불쑥 불쑥 불안이 올라올 때는 아내의 격려를받으며 이내 마음을 다독였다. 돌이켜보면 책도 강의도 아내가 없었다면 못했을 것이다. (아, 책은 아직 안끝났지.)
11월 7일. 부지런히 출발했지만 백화점 휴점일이라 문화센터로 가는 입구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해 인포데스크 직원의 안내를 받아 담당자를 만났다. 서비스직에 계신 분들이다보니 하나같이 친절하셨다. (공기관보다 좀 더 친절한 느낌적인 느낌.)
그런데 강의실에 비치된 노트북은 그다지 친절하지가 않았다. 파일을 여는데 30분은 넘게 걸린 것 같다. 중간에 아르바이트생이 도움을 줬지만 컴퓨터를 껐다 키는데만도 10분은 걸린 것 같다. 그 사이 한, 두 분 강의실에 도착하셨고 결국 자료 없이 강의를 시작했다.
18개월 영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다양한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오셨고, 손녀를 위해 오신 할머니도 계셨다. 부모를 위로하는 주제에 맞춰 '자식 사랑도 적당해야 한다'는 문장으로 도입해 준비한 자료에 사례를 곁들여가며 강의를 이어갔다.
듣는 분들이 경청과 웃음으로 작은 긴장들마저 잘 풀어주셔서 계획에 없던 에피소드들이 샘솟아 시간을 가득 채워 강의를 마쳤다. 질문도 하셔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로서 같이 화가 나기도 했고 속상하기도 했다. 반응에 예민한 터라 잘 들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했는데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뒤늦게 아쉬움이 남았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번호도 따 가주셔서(?) 더 신나고 뿌듯했다.
브런치 덕에 새롭고 기분 좋은 경험을 했고, 잘 못해도 실망하지 말자 다짐했었지만 생각보다 더 만족스러운 첫 강의였다. 그런데 긴장이 풀린 탓인지 그 날 오후부터 몸과 마음이 축 가라앉는다. 어젯 밤엔 잠까지 설쳤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라 집단 무기력과 우울증을 앓는다는데 아마 나도 그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그래도. 또 마음을 다잡고 해봐야지. 또 다시 나아가야지. 모르는 척 할 게 아니라 조금이나마 변하게 별 것 아닌 힘도 써봐야지.
괜찮아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 버릴까봐 나는 두팔로 껴안고 집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젠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 보듯 짜디짠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