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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Sep 14. 2021

입 짧은 아들에게 엄마의 집밥이란

다른 사람들은 일 년에 냉장고 청소를 몇 번이나 할까? 나는 냉장고 청소를 미룰 핑계를 365개 이상 알고 있다. 그러니까 하루에 하나씩만 핑계를 대도 1년 이상 냉장고 청소를 미룰 수 있다. 그 365개 이상의 핑계를 비슷한 것끼리 묶어보면 결국은 두 가지다. 시간이 없다. 귀찮다. 냉장고만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번잡하다’이다. 좁은 주방에 둘 곳이 없어 더 좁은 베란다로 밀려난 냉장고의 문은 제대로 열 수 없다. 냉동실도 절반, 냉장실도 절반씩만 열면서 필요한 것만 겨우 꺼내 쓴다. 그러니 냉장고를 열 때마다 짜증이 밀려와 잘 열지도 않았다. 남편도 나도 아이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적고 집에서 밥을 먹을 일도 거의 없었기에 어떤 날은 단 한 번도 냉장고를 열지 않아도 되는 날도 있었다. 자연히 냉장고에 무언가를 넣어두면 고스란히 얼거나, 마르거나, 곰팡이가 나거나, 썩어서 진물이 나오거나,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려야 했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죄책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냉장고를 버리고 냉장고에 넣지 않아도 되는 음식만 사다가 먹고 싶을 때도 있었다. 만약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배달음식으로 연명하며 나의 생각을 실천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아이 엄마가 아닌가!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냉장고를 열어야 할 일도 많이 생겼다. 열 때마다 그 지저분함과 냄새와 불편함에 짜증이 머리 끝까지 솟구쳐 올랐다. 냉장고를 열기 싫어서 밖에서 사 먹거나 배달을 시켜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중엔 정말 물리고 물려서 고를 수 있는 메뉴가 없다. 차라리 후루룩 김치찌개를 끓여 계란 프라이를 하나 부쳐내 먹는 것이 더 낫다. 그러려면 정리가 필요했다. 큰 맘먹고 남편을 조르고 졸라 일요일 하루를 냉장고 청소에 투자했다. 먹지도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오래 묵은 음식들을 싹 버리고 내가 진짜로 해 줄 수 있는 음식, 해주고 싶은 음식으로 다시 채웠다. 친정엄마와 시엄마가 바리바리 싸준 묵은 음식들을 버리는 건 어쩐지 찜찜하면서도 속이 시원한 요상한 일이다.


어쨌든 남편과 둘이 모든 음식을 꺼내서 버리고 정리하고 다시 사용하게 편하게 채워 넣고 하면서 집에서 해주는 음식이 늘어간다. 아이도 좋아한다. 그거면 됐지 뭐.



‘엄마의 집밥은 쓰레기다.’ 라고 한 게 아니니 그나마 다행인 것인가? ㅠㅠ


 이럴 수가! 아들! 맛있다며!



엄마가 해줄 때마다 엄지 척을 올리며 맛있다고 하더니.. 너도 살아야 해서 그런 거였니?

아… 왜 배신감이 느껴지는 걸까?

하지만 엄마가 분발할게. 엄마가 해주는 집밥은 맛도 있다고 할 때까지.




. 저게 벌써  도 더 지난 일이다. 365 이상의 핑계를  번씩  썼으니  청소를 해야  때가 되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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