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현 Apr 29. 2022

DAO는 반국가적인 국가일까?

비트코인 이후 13년, 블록체인 진화의 방향(1)

민주주의의 3요소에는 빈틈이 없다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중세 시대의 종교, 근세의 왕권과 비슷하죠. 사람들은 그것을 신성시하고, 그것에 반대하면 처벌받거나 운이 좋다면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국민주권, 사유재산, 1인 1표 같은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한다면, 당신은 이것에 반대할 수 있나요?


주권(sovereignty)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저는 정치학은 잘 모르지만, 주권이 뭔지 어렴풋이는 알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태어날때부터 갖는, 고유하고 소중한 내재 가치를 존엄성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나일 수 있고, 나의 삶을 살 권리는 그 존엄성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물론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죠. 그래서 인류는 오래 전부터 사회를 이루고 살아왔습니다. 국가는 사회의 한 형태죠. 최근 한 300년 정도,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는 집단을 중심으로 국가라는 것이 등장해왔습니다. 국가는 다른 국가와의 경계를 통해서그 국가의 고유한 힘과 속성이 미치는 범위가 결정되는데, 그 범위를 주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국가끼리는 그것을 침범하지 않기로 약속합니다.


이 주권의 범위 내에서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은 사유재산과 평등한 정치적 권한을 갖습니다. 그 국가의 경제는 이러한 사유재산제도에 근거해서, 정치는 1인 1표 대의제 아니면 소수의 독재 사이의 어느 범위에서 결정됩니다. 현대국가의 이 세 가지 특성은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종합되고, 이 기본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조직을 공화국(Republic)이라고 부릅니다. 이슬람권의 나라들조차도 자신들을 이슬람공화국이라고 부르고,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숱한 독재국가들도 스스로를 공화국이라고 부릅니다.


국가의 주권을 부정하고, 평범한 개인이 혼자만의 국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국가를 만들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과 자원을 들여봤자 가능할까 말까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일으킨 방식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서, 특히 러시아어 인구가 많은 곳에 수 년에 걸친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관여를 통해 반국가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전투였고, 현재는 큰 전쟁으로 번졌습니다.


사유재산에 대한 반대는 어떤가요? 북한이나 중국 같은 공산제 국가는 사유재산이 없으니까 불가능하지는 않은 걸까요? 세계무역에 참여하는 현대 국가 가운데 그러한 순수 공산제 국가는 애초에 없다고 봐야 하지만, 실제로도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지양할 뿐 사유 재산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국가는 법과 제도로 작동하고, 독재 국가라 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법이 없으면 넓은 범위의 사람들을 통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니까요. 모든 법은, 재산에 관한 소유권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유재산 개념이 없거나, 그것에 반대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재산권 반대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시애틀 추장이 있습니다. 다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그 글,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시애틀 추장의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허나 하늘을 어떻게 사고 팔지요? 땅을 사겠다는 생각은 우리에겐 너무나 낯설 뿐입니다. 맑은 공기와 반짝이는 물이 우리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것을 팔 수 있습니까?"


물건이 누군가의 소유에 속하고, 그래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나라 같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그 나라에서부터 소위 선진국에 이르기까지 사유재산 제도를 갖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시애틀 추장이 다스리는 곳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남은 것은 투표, 대의제, 그것을 뭐라고 부르던 국민이 국가권력의 행사에 참여하는 정치제도입니다. 크든 적든, 국가의 정치적 지도자들은 국민에게, 심지어는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에게 정치적인 의사결정권한을 보장합니다. 현대 정치를 맹신하는 사람들은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왕이나 귀족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대의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국민은 선거날에만 자유민이고 나머지 기간 동안은 노예 상태에 빠져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국가가 거기에 소속된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통해서 정치권력을 나눠갖고 그것을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세계지도에는, 적어도 인간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이러한 민주주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국가 바깥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국가 바깥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DAO는 반국가적인, 또 하나의 국가다


분산형 자율조직, 다오DAO는 그 예외를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시도에 관한 것입니다. 분산형 자율 조직(Decentralised Autonomous Organization)은 민주주의나 공화국에 명백히 반하는 개념이자, 실천입니다. 이제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는 앞서 민주주의를 설명하면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이상으로서의 민주주의보다는 좀 더 넓은 범위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좀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과 북한의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국가를 권력을 공유한 집단이 이끄는 방향으로 만들어가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두 나라 모두 비슷해 보입니다. 누가 어떤 분야에서 더 큰 이익과 권한을 누릴 것인지에 관한 차이는 있겠지만 국가라는 조직의 형태와 속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니까요.


공백과 대안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중심의 지구질서에서 사람들은 국적을 쉽사리 바꿀 수 없습니다. 국적을 여권이나 신분증에 쓰여 있는 서류상의 기록으로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선택하고 만들 자유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정말 그런가요? 여권에 적힌 어떤 나라 이름의 영향력, 그 주권이 미치는 범위의 영토, 사회, 시장이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그거소가는 다른 무언가 혹은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서 새롭게 창조된 삶의 형태를, 적어도 하루 중 몇 시간이라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서 얼마나 될까요?


국가의 주권은 군대라는 유형력과 흔히 외교력이라고 불리는 국제적인 영향력으로 유지됩니다. 경제질서와 시장의 규모는 사유재산제에 기초하고, 군과 경찰은 이를 내부적으로 뒷받침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치는 이러한 경제질서와 국제적인 주권이 갖춰진 토대 위에서 작동합니다. 주권이 흔들리면 경제와 정치는 다른 나라의 먹잇감이 되고, 경제가 위기에 처하면 정치질서도 흔들립니다. 아랍의 봄은 세계적인 식량 가격 폭등의 직접적인 결과였고, 부마항쟁 역시 오일쇼크 이후 물가상승에 큰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 정치적인 주목도에 비하면 너무 재미가 없는 이야기라서 간과되곤 합니다.


DAO는 이러한 것들 즉 현대 국가의 핵심 구성원리에 영향을 받지 않는, 기술적으로 조형된 새로운 형태의 조직, 결합, 기관을 말합니다. DAO의 마지막 글자인 'O'는 이것이 개념적으로 단체(organization)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을 단순한 조직이나 단체로 보는 설명은 정확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 DAO란 특히 비트코인 등장 이후 블록체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용된 시점부터 중앙집권적인 다른 어떤 조직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른 어떤 조직에는 당연히 국가가 포함됩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다른 어떤 국가와도 구분되는 조직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결국 또 하나의 국가를 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DAO는 국가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탈중앙화는 그 자체로 반국가적이니까요. 군대와 외교, 화폐와 금융규제, 선거제도는 제도적으로 통일된 국가조직을 전제로 합니다. 분야는 나눠질 수 있겠지만, 각 분야의 의사결정권자, 책임자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이 사람 혹은 어떤 조직의 특정한 점을 중심으로 다른 것들이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비트코인의 등장으로 이미 알려져 있는 국가의 울타리 바깥에, 상당한 규모의 금융 시스템이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국가의 영향력 바깥에 놓인 자본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금을 가진 부자들이 그것을 어디 숨겨놓으면 그것은 국가와는 상관이 없겠죠. 그러나 결국에 그 금은 부자의 필요에 의해서 국가가 관리하는 시장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의 가치는 국가가 개입한 시장과의 연계 속에서, 화폐단위로 표현될 때만이 의미가 있으니까요.


비트코인도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비트코인은 실물자산을 대체하는 유력한 수단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금융시장에서 비트코인은 금과 거의 비슷한 것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비트코인은 시중 화폐단위로 가격이 매겨지고, 그렇게 사고 팔립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분명한 차이점을 갖습니다. 비트코인은 화폐와 마찬가지로 내재가치가 없습니다. 교환수단의 성격을 가질뿐, 그것 자체로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유가증권과 마찬가지로요. 게다가 비트코인은 국가가 발행한 것도 아니고, 특정 기업이 보증하거나 담보의 대체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마치 국가가 발행하거나 보증한 화폐처럼, 혹은 금융사가 관리하는 파생상품처럼 그 자체가 플랫폼이 되어 2차적인 금융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더리움으로부터 출발해, 우리가 알트코인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새로운 체인들이 그것입니다.


반국가단체를 조직한 사람들은, 저희들끼리는 국가의 영향력 바깥에, 시장의 영향력 바깥에 있다고 믿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상의 수많은 영역들이 자신이 속한 국가와 관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가 발행한 화폐를 사용하고, 직장에서 요구되는 것들을 수행하고, 일상적으로 법과 제도를 준수하는 척해야 합니다. 사실 따르는 척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양심의 자유는 침해받지 않는 자유이지만,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자체는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블록체인 플랫폼이 기존 질서로부터 벗어난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가치가 데이터의 형태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는 군대와 같은 물리력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시장의 역사성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정치적 규칙이 정의되어 있지 않은 채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블록체인이 완전히 순수하게, 자연과학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세계에 있는 컴퓨터를 모두 없애버린다면 블록체인도 사라지겠죠. 하지만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합니다.


DAO는 이러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경제, 정치질서를 활용하는 모든 조직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국가가 아니지만, 기존 국가의 울타리 바깥에서 움직입니다. 물론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국적을 갖고 있겠지만, 그 질서 자체는 국가의 통제 바깥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질서는 한번 만들어지면 새로 추가되는 것 이외에는 파괴되거나 왜곡되지 않는 데이터의 결합으로 구성됩니다. 미국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바꾸거나 개입할 수 없습니다. 군대나 경찰이 위협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기존의 국가들이 DAO를 거부하는 유일한 방법은 개인을에 대한 처벌과 규제를 통해 기존 시장 및 정치질서와의 접촉을 법률적으로 차단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한국을 포함해 많은 국가들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DAO 스스로가 독립성을 갖고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생태계를 제공하는 과정이 중단되지는 않습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나는 왜 <오징어게임>이 재미없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