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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찡 Oct 18. 2015

현장의 맛

01. 현장에만 가면 힘을 내는 슈퍼파월


어제부터 현장에 들어왔다. 나는 이상하게 사무실보단 현장을 좋아한다. 

휑하기 그지없는 빈 공간에서 새로운 공간이 창출되는 것만큼 재밌는 것은 없다.

시간도 잘 간다. 눈만 깜빡이면 금방 시간이 흐른다. 

아직도 수정할 것이 많은 현수막을 보는 것도 뭐 나름 기분이 괜찮다. 


현장에 들어가기 전 무진장 아팠더랬다. 

입안은 황야처럼 헐어 피가 났고 편두통은 위치를 바꿔가며 지끈거렸다. 

스트레스성 위염 때문에 끼니를 연속으로 굶어야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아팠던 몸이 현장 공기를 마시면 또 멀쩡해지니 말이다. 

선배들은 내가 극도로 긴장하기 때문이라던데, 아드레날린이 혈관 끝까지 퍼지는 기분도 즐겁다. 

그 넓은 컨벤션 센터들을 누비는 것도 내 스타일인가보다.

밥 한술 뜨면 여기서 날 부르고 저기서 또 다른 일이 터지고 긴장감 일만 퍼센트인 상태가 좋다. 


사실 현장 총괄은 이런 글을 쓸 상태가 아니다.

나는 11월에 총괄을 맡은 행사가 있어 이번 행사는 작은 부분인 전시만 맡았다. 


"아 저, 국제회의 하기 전엔 전시를 했었어요." 라고 말하기엔 내 경력은 보잘 것 없다.

4개월동안 인턴만 한 터라 전시가 어찌 돌아가는지 개념만 들었다고 보면 되겠다. 그야말로 초짜다.

왜 베테랑들은 척하면 척이라지 않나 - 실제로 나를 가르치신 차장님은 공간만 보면 모든 것이 시뮬레이팅이 되셨다.- 어디에 뭐가 들어와야 하는지 정확하게 견적이 나온다던데 나는 정말 백지 상태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가 끼어있으면 속도는 현격하게 줄어든다. 가르쳐야하기 때문이다. 

 "헉 차장님 트러스트가 뭐에요?" 라고 하는 등 기초적인 용어조차 몰랐다. 이건 뭐 일을 하라는건지 고개를 저으셨을 협력업체 직원분들께 죄송할 정도다.  


나도 경험이 많아지면 '아 걔랑 같이 일하느라 힘들었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은 차마 내가 먼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풋내기였고 오히려 나를 가르치느라 고생하셨던 분들이 많음을 아는 염치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현장엔 공사하는 소리, 구조물 올라가는 소리들로 분주하다. 

톱질이니 전기니 거친 느낌마저 든다. 먼지도 많고 시끄럽고. 크게 말해야만 상대가 알아 듣는다. 

이게 뭐라고 어쩜 이렇게 좋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내는 건 언제나 짜릿한 일이다. 전지전능하단 느낌이 들 정도다. 

지지직 거리는 무전기가 오늘도 정겨웁다.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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