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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찡 Nov 30. 2015

11월의 제주를 보내며

03. 11월 30일의 짧은 회고. 


시간이 없었다. 글을 쓸 마음의 여유조차 없어  매우 어려웠다.  

지난 10월과 11월을 어찌 보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해도, 문득 기억나는 또렷한 장면들이 없었다.

사무실에 있었고, 내 앞 모니터가 반짝였고. 엑셀이 몇번 다운되기도 했었고. 전화 통화를 엄청 많이 했다.  

그것은 내가 정말 많은 일을 했기 때문이었고, 많은 상황들을 겪었기 때문에 시스템에 과부하가 생긴 것이리라.


복기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컨퍼런스 기간엔 초가을의 따뜻함과 한여름의 폭우가 공존하던 제주에 1주일 상간에 폭설이 내리니 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억상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세한 기억들이 사라지고 '끝났다' 는 안도감이 남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 언제 끝나냐' 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던 소처럼 일을 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불과 2주도 채 지나지 않았다. 



무게와 한계


이번 컨퍼런스에선  PM (Project Manager)을 맡았다.

천성이 꼼꼼하질 못하고 허술한데다 경험까지 없으니  내 존재는 없느니만 못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던데, 돈을 버는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세심함이 부족하면 고생하기 마련이다. 

특히나 총괄을 맡는 사람일수록 꼼꼼히 챙겨야할 부분들이 있다. 저절로 그 프로세스들이 거쳐지면 좋겠건만, 나는 일일이 챙기지 않으면 펑크가 날 것이 분명한 사람이니까. 

매일이 한계에 이르렀고, 벽에 부딪히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맹세컨대, 단 한 순간도 대충 한 적이 없었다. 정말 최선을 다했고,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늘 확인을 하면서 진행을 했다. 

그래도 상사에게 중간 점검을 받을 때 쯤이면, 꼭 보이는 빈틈은  칼이 되어 날아오는 것 같았다. 

나는 왜 먼저 보이지 않을까? 란 생각에 잠들 때 조차도 괴로웠다. 속도는 나지 않았고, 도와주는 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성난 폭풍을 만난 제주의 파도가 ICC를 집어삼키는 꿈을 꽤 자주 꾸었다. 


현장에서는 모든 컴플레인을 받아내는 '욕받이 무녀'가 된 것 같았다. 

사실 진짜 내 잘못때문에 욕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운영요원이 불친절했다던가, 확인 작업을 하는 직원에게 '내가 누군줄 알고 이러느냐' 부터. 

누군가가 자신의 심기를 건드려서 퍼부을 대상이 필요했다는 것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엔 셋째날이었나? 서럽고 지친 마음에 빈 회의장에 들어가 꺼이꺼이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세팅도 넘어가고, 개막도 넘어가고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날이었다. 


괴로워했던 이유는  단순히 PM의 책임감 뿐만이 아니라 더 잘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의 무게때문이었다.

정말로. 잘 해내고 싶었다. 누가봐도 '아 성공적이었다' 라고 할 만큼 진짜 잘하고 싶었다. 

이게 내가 풋내기 티를 아직 못 벗은 가장 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맡은 일을 제대로 하는 것에만 집중했어야 했다. 


컨퍼런스에 사람들이 많이 오고, 흑자가 나고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것은 내 영향력 바깥의 일이다. 

나는 내가 맡은 바 -회의가 제대로 개최될 수 있게, 오기로 한 연사가 제대로 와서 강연을 할 수 있게- 챙기는 일에 더욱 집중을 했어야 했다. 제작물이 넘어갈 때 좀 더 꼼꼼하게 살폈어야 했고 등록대에서 DB가 엉키지 않도록 체크하는 일을 좀 더 잘했어야 했다. 회의장 구성의 변경사항 전달을 좀 더 명확하게 해서 장비 수급이 좀 더 잘 되게 했어야 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 즉 내 영향력으로 변화가 생길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집중을 했어야 했다. 


폭우가 오든, 흑자가 나든, 적자가 나든  그것은 사실 나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내가 아등바등한다고 안 올 사람이 오나? 아니다. 


그것은 조직위원회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다. 


회의장의 구성, 연회장의 구성, 등록데이터의 구성 및 점검, 발표자 데이터, 현장 운영요원, 제작물 

뭐 기껏해야 이 정도다. 그나마 내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범위 말이다. 


이미 겪었으니 하는 말이지만, 나는 내가 아등바등 고민할 시간에 위에 저 목록들을 더 잘챙겼으면 

더 완성도 있는 행사를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우리집마냥 드나들던 ICC Jeju 당분간 안녕!


눈앞에 바다가 있는데! 


"헐 팀장님 우리 바로 앞에 바다가 있었어요!"

"저기가 '범섬' 이래요!" 

얼마나 조급하기만 했냐면, 숙소로 쓰던 호텔 창을 열면 바로 제주의 명물 '범섬'이 보이는데 

새벽에 출근하고 밤 늦게 퇴근하느라 그 존재 자체를 모르고 닷새를 보냈다. 

결국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나와 팀원들은 '범섬'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미숙한 사람일 수록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눈앞에 퀘스트를 해치우는데만 급급한다. 


아름다운 범섬 (출처:네이버 지도) 우리가 이걸 놓쳤다.


무전기를 들고 왔다갔다 하느라 그렇게 뛰어다녔고 정신없이 일들을 처리했는데 내가 이 행사를 총괄하는게 맞긴 한건지 의심스러웠다. 사실 총괄이라 하면 큰 그림도 좀 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흐름을 잃지 않게 이끌어야 하는데, 나는 내 눈앞에 컴플레인에만,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급급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내가 몇 번의 행사를 하고 나면 큰 그림도 보는 여유란게 생길까, 

그 때는 눈앞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둘째 날 정도에는 깨달을까? 




 어느 순간 생겨요. 어느 순간 다 보여요


서울에 올라와 상사인 과장님과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고민들을 털어놨다.  과연 언제쯤 내게도 과장님같은 여유가 생기냐고.  중간 보고를 할 때마다 내가 놓치는 부분을 과장님은 어쩜 그렇게 잘 짚어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과장님은 어느 순간 보는 눈이 생기게 된다고 그러셨다. 

그래 그 어느순간이 언제인지는 모르겠다만, 열심히 구르다보면 이번보단 더 나아지겠지. 



11월 안녕! 


이 행사를 준비한 것이 2014년 11월부터였는데 2015년의 11월이 채 몇시간도 안 남았다. 

부족한 것이 넘쳐나는 나를 얼르고 가르쳐 주신 회사의 어른들,  

꼼꼼함이라는 요소 자체가 결여된 나를 붙들고 제작물을 만들어주신 디자이너 협력 업체분들. 

주관사 분들, 팀원들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어느 것 하나도 마무리 짓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정산도 남고 결과보고도 남았지만 나의 11월, 11월의 제주도 안녕. 


따뜻한 겨울엔 귤이나 까먹으며 나를 채우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소박한 나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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