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찡 Oct 20. 2015

여자친구를 뺏기는 남자

02.  죄목: 무심한 여자를 사랑한 죄

  "꼭 자기를 뺏기는 기분이 들어."


행사 때문에 주말을 반납하며 일을 했고, 그도 바쁜 와중에도 틈을 내어서 얼굴을 보러 찾아와준 그가 내게 말했다. 요즘들어 그와 데이트 할 시간이 없다. 가을은 내가 가장 바쁜 시기이고. 주 7일을 일할 때도 심심찮게 있는지라 남자친구와 오붓한 데이트를 한지 꽤 오래됐다.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겠지.




달달한 남자와 건조한 여자


그는 참 다정한 사람이다. 아무리 잠시라도 나를 보러 일하는 현장으로 찾아오거나 나와 같이 고생하는 우리 사무실 식구들까지 챙긴다. 그도 일정이 있고 바쁜 일이 있기에 "다음에 볼까?" 라 물어도 "그래도 보고싶어. 내가 보러갈게." 란 대답을 하는 남자다.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볼 법한 연애의 로망같은 남자랄까. 표현도 많고, 무엇보다 내가 우선인 사람. 장난기가 많아서 내 통통한 볼살을 가지고 주무르고 늘리는 장난을 하는 걸 참 좋아하는 남자.  피곤해도 하루를 마감할 땐  꼭 내 목소리를 듣고 잠자리에 들어야하는 사랑꾼이랄까.


난 그에 비하면 굉장히 무뚝뚝한 편이다. 특히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태가 되면 몸 상태도 나빠지기 때문에 더 짜증을 많이 낸다. 아마 남자친구는 나와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이 줄어드는 것도 힘들었을테지만 내가 건조하기 짝이없는 무심함을 견디는 것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욕심많은 내 성격도 한 몫을 할테다. 성과에 집착하는 성격은 스스로 야근하게 만들었고, 주말에도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보내는 경우는 허다했다. 남자친구랑 잠깐 얼굴 보는 와중에도 전화를 들고 업체나, 조직위랑 통화하는 일도 잦았다. 그렇게 돌려대니, 몸이 남아날 리가 있나. 쉴 수 있는 주말이면 데이트를 하기보단 집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원래 다정한 성격이 아니라서 예쁘게 말을 하거나, 삐친 것 같으면 애교로 먼저 풀어주는 법이 없다. (계속 적다보니, 남자친구가 나를 왜 만나지? 란 생각도 든다.) '  아무리 일이 힘들다하더라도 다정한 말 몇마디가 뭐가 어렵다고.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애교있는 태도로 좀 봐달라고 끝나면 내가 더 잘 해주겠단 말 한마디면 그는 기꺼이 기다려줄텐데!



복잡한 시소놀이


 연인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애정을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장작불과 같은 이치라 땔감이 빨리 탈 수록 빨리 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땔감이 불씨를 이겨서도 안된다. 애정이란 불과 온기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적당량의 장작을 넣어줘야 한다.  그러려면 둘 다 노력해야한다. 노력이란 건 사랑의 척도라고 단정짓기 보다는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너무 사랑해서' 헤어짐을 택할 수도, 노력해서 사랑을 지켜가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수많은 방법이 있음에도 함께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다.


'완전한 애정의 균형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둘 중 반드시 누군가는 좀 더 사랑을 표현하고, 남은 상대는 그보다 덜 표현하게 되어있다. 그 균형은 일정하지 않고 시소를 타듯이 위 아래가 번갈아 바뀌는 것 같다. 얼마 전 까진 바쁜 그에게 내가 '일에 너를 뺏기는 기분이 든다'며 울적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남자친구가 이러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바랐던 건 나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걸 표현해주는 것이었다. 뒤척여 잠들기 어려운 날엔 보고싶단 메시지를 남겨주거나, 전화통화에서 피곤하다고 먼저 잔다는 말 보다 보고싶다고 만나고 싶다는 말을 더 듣길 원했다. 남자친구도 내게 원하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 도시락을 시켜먹었는데 이건 네가 좋아할 것 같은 메뉴가 나와서 네 생각이 더 많이 난다라던가, 여긴 날씨가 쌀쌀한데, 따뜻하게 챙겨입고 다니라던가. 그런 사소하고 애정어린 표현을 아끼지 않는 것을 원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가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숨기지 않고 표현해야겠다.




"자기는 내가 일하는 거 싫어? 그만둘까?"

그를 안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가 내 마음을 읽어주길 바랐다. 나한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없다는 걸 믿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네가 좋아하잖아.  일하는 거 행복하다며. 그럼 됐어. 행사 끝나고 더 잘해줄거지?"


어쩜 이 남자는 말도 예쁘게 할까.


다시 바빠지면 또 이 마음을 잊고 무심히 굴겠지만 생각날 때마다 더 사랑을 표현해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또 서운하게 만들 수 있다. 내 천성이 건조한 사람이다. 어쩌겠나 이런 나를 사랑하는게 죄라면 죄겠지.

그래도 마음을 다치겐 하고 싶지 않다.


다음에 더 잘할게.

뺏기는 기분 들지 않게 언제나 너의 것이었던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뭐 먹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