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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작가 Jan 01. 2022

분명 나는 같은 사람인데..
왜 다르게 평가될까?

-  프로그램에서 함께 하는 사람에 따라 극과 극으로 달라지는 나의 능력

 방송국이 아닌 프로그램 단위로 계약하는 프리랜서 방송작가 특성상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나의 업무도 끝이 났습니다. 매주 몇 년 동안 이어지는 레귤러 프로그램보다는 10회 혹은 12회 한 시즌씩 가는 프로그램이 많은 요즘 방송 특성상 이런 일들은 계속 반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가면 매번 새로운 작가, 새로운 피디 등 새로운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함께 일했던 작가님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같이 가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곳을 가든 아는 사람보다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항상 더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분명 같은 사람인데 프로그램 별로 매번 다른 평가를 받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다르기에 당연한 이야기 일수 있지만 어느 프로그램에서 저는 어리바리한 작가, 일 못하는 작가, 꼼꼼하지 않은 작가로 여겨져서 메인 언니가 소리 지르며 화내는 것을 매일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디어가 많은 작가, 부지런한 작가, 빠릿빠릿한 작가, 인맥이 넓은 작가 등등 분명히 나는 같은 사람인데 극과 극으로 다르게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찌 보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때마다 눈치를 많이보고, 개복치 성향인 특성상 주눅이 더욱더 많이 들었습니다. 출근하는 길에 교통사고 나서 죽으면 일을 안 하게 될까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한참 일을 하다가 참지 못하고 전화받는 척 사무실 밖 전화 부스로 가서 한참을 울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사무실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업무는 많았고 제 마음은 지쳐갔습니다. 하루하루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저는 매일 짓눌렀지만 쉴틈 없이 일해야만 했습니다. 웃을 여유는 없었고, 길을 가다가 절로 눈물이 흐르는 날도 많았습니다. 대본을 써서 확인받는 날이면 그날은 더욱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밤새 열심히 써서 드리고 나면 메인 언니는 이른 아침 전화를 걸어 대본 한 문장 한 문장 지적하셨습니다. 제가 그때마다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합니다' , '수정하겠습니다' 밖엔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자신감도 없어지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어쩜 이렇게 나는 멍청한 걸까' 하루하루 자괴감에 빠질 수밖엔 없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감는 순간까지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더 참자' 라며 겨우겨우 견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프로그램은 정해진 만큼의 시즌만 방영된 후 끝이 났고, 힘들었던 시간 또한 끝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 시간을 어떻게 다 겪었을 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프로그램을 한 후 저는 일의 후유증으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 밖엔 없었습니다. 사실 끝난 직후에 내가 무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회복에만 열중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 방송 작가가 아닌 다른 일을 해볼까 계속 고민하며 전에 함께 일했던 왕선배 작가님께 고민을 털어놓던 중 의도치 않게 새 프로그램에 바로 투입되었습니다. 프로그램 내용은 듣자마자 욕심나는 프로그램이었기에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서 저는 우선 그 전 프로그램처럼 하나의 팀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팀과도 회의 할 때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저는  촬영에 필요한 장소와 일반인 게스트들을 잘 찾는 인맥이 넓은 작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 프로그램과는 달리 활발하고 잘 웃는 작가였고, 프로그램 진행사항에 어려움이 있을 때도 척척 도움이 된 작가였습니다. 덕분에 함께 일하는 작가님들과 피디님들이 덕분이라며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바닥을 쳤던 자존감도 되살아났습니다. '나도 작가로서 잘할 수 있구나' , '내가 그렇게 엉망진창. 구제불능인 작가는 아니구나' 스스로 위안을 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별로 극과 극으로 평가받는 스스로를 보면서 이는 나만의 문제가 아닌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궁합, 그리고 나와 맞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일상생활과 관계를 맺을 때 모든 사람이 나와 맞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일 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거나 잘 맞을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일하는 스타일도 사람마다 다르고,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부서마다 업무의 성향이 다르듯이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관찰 예능, 야외 버라이어티, 실내 토크쇼, VCR 구성 등등  프로그램마다 스타일이 다양합니다. 많이 해본 프로그램 혹은 나와 잘 맞는 프로그램에 따라 나의 능력치도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저와 잘 맞는 프로그램을 바로 잘 찾아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프로그램에서든 제가 한 가지씩은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말입니다. 그 안에서 배우고 갈고닦는 과정을 겪고 나면 새로운 곳에 갔을 때 분명히 마음도 능력도 한층 더 성장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겪을 때는 고통스러웠지만 지금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열심히 배우고 잘 견뎌서 모든 게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하루에 열두 번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을 잘 견뎌온 내가 안쓰러우면서도 대견스럽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제가 받는 평가에 일희일비하며 연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단지 제가 더욱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프로그램, 그런 일터를 찾을 수 있는 눈을 먼저 길러야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평가들에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제가 제 소임을 잘 해낼 수 있도록 제 자리에서 제 몫을 잘 해내는 작가가 되어야겠습니다. 아무리 나와 맞지 않는 프로그램이고 맞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내 마음이 힘들다고 하더라고 내가 일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다 그 사람들의 핑계만 될 수 없음을 일하면서 더욱 깨달았습니다. 나와 맞지 않는 다고 저 또한 쉽게 평가 하지 않고 스스로도 부족한 부분들을 많이 채우는 작가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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