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seudonysmo Jun 26. 2023

35번째 생일 즈음 드는 생각.

살아가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특별하게 각인되어 마음에 자리 잡는 사람이 과연 내게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과 어떤 마음으로 다른 하나의 존재에게 의지하고 애정을 쏟고 심지어 한 공간에 살면서 후대를 낳고 생활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며 사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항상 '누군가를 책임지기에는 내가 완성되지 않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더 오랫동안 교류해 온 사람들에게는 '한 사람에게 그 정도의 깊은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지 않아'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를 주로 해 왔다. 시간이 지나 그것은 일종의 자기 암시가 되어, 이제는 도리어 그 대답들이 켜켜이 쌓여서 소위 말하는 '비혼 라이프'라는 것으로 굳혀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중고등학교를 지나며 나를 숨기고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 일종의 생존전략이었던 사회적 장막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어느새 얇디얇은 피부 한 겹처럼 자연스러워졌고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며 나 자신을 향했던 불쾌한 저주들도 잔잔한 바닷속 아래로 가라앉았다. 20대 후반의 나는 당시의 잔잔함을 '나 자신을 깨닫게 되어 찾은 안정감'으로만 치부했지만, 30대 중반이 되어 돌이켜 생각해 보니 도리어 그 과정에서 체득한 것은 나를 숨기고 상대방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내향형 맞으세요? 너무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시는데?

끊임없이 상대방이 원하는 이야기를 내어놓으며 이야기를 들어주되,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극도로 삼가는 법. 상대방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마치 상대방과 어긋나지 않는 것만 같이 대화를 이끌어가는 법. 나를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배웠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나를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상대방이 원하는 나의 모습을 내어주고, 상대방이 싫어하는 나의 모습은 최대한 깊숙이 숨기는 법. 그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었고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으나 이윽고 나는 그 에너지 소모를 관리하는 법도 차츰 터득해 갔다. 소위 말하는 '사회성'이 소진되는 시기가 어느 정도 예상이 될 즈음마다 휴식을 계획하기. 그렇게 사람들과의 사교는 나에게 있어 끝없는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제를 꽤나 잘 수행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친절하지만, 너는 참 차가운 사람.

나는 상당히 계산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비록 복잡한 수학 문제는 풀지 못하더라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내가 어떠한 수치로 기능해야 하는지는 누구보다도 빠른 속도로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특별히 따뜻하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나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이제는 다른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평생을 다른 방식으로 기능해 온 사람이라, 진정한 사랑의 대상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런지도 모르겠다고.

작가의 이전글 The art of writing a repor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