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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Sep 17. 2023

스페인 정치계 볼드모트에서 모두에게 만능열쇠가 되다

스페인 정부 구성의 핵심이 되어버린 카탈루냐 급진주의자들

예상치 못한 조기 총선으로 인해 스페인 정치계의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흘러가고 있다. 지난 총선의 결과 이후, 통상의 절차와 마찬가지로 국왕이 각 정당의 대표를 만나 숙고를 거친 뒤,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PP의 당 대표인 알베르토 누녜즈 페이호(Alberto Núñez Feijóo)를 선택하였고, 오는 9월 26일과 27일 토론(Debate de investidura)을 통해 총리직에 도전하게 된다.

주어진 약 한 달간의 시간 동안, 절대 과반을 만들기 위해 그가 취한 최초의 전략은 바스크 지역 정당인 PNV를 포섭하는 것이었으나, PP와 Vox가 공존하는 한 협력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PNV가 (당연하게도) 고수함에 따라, PP는 실질적으로 단순 과반을 달성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한 편, 최다 득표 정당은 아니지만 여러 정당의 연합을 통해 총리직, 즉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 PSOE의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와 Sumar의 욜란다 디아즈(Yolanda Díaz) 역시 여전히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현재의 연합체 만으로는 우파 연합(PP-Vox-UPN)과 동일한 의석수를 가지고 있기에, 단순 다수를 통한 정권을 잡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고, 우파 연합 대비 다양한 정당이 구성되어 있고, 이번 총선을 위해 급하게 뜻을 모은 Sumar의 한계 상 이런저런 내분이 잔잔하게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 Sumar에 대표권을 내어준 Unidas Podemos의 경우 지난 토요일 현 상황에 대한 재검토를 위한 지휘부 회의를 진행하고, Sumar가 Unidas Podemos를 비가시화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슈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지역 정당, 특히 바스크와 카탈루냐에 있었다. PNV는 언제까지나 Vox를 막아야 한다는 대의에 동참하기에 PSOE의 좌파 연대에 동참하고 있지만, 한 연설을 통해 '우리는 페드로 산체스나 누녜즈 페이호를 뽑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대신할 정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PP나 PSOE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EAJ-PNV를 선택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다시금 카탈루냐가 스페인 정치의 중심축에 올랐다

 모든 정당들이 사실상 지난 여러 선거에서 지지 노선을 확고히 했기에, 공교롭게도 PP-Vox와 PSOE-Sumar로 대표되는 양 측의 균형을 깨트릴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하필이면 Junts per Cataluyna의 7개 의석에서 누군가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2017년 이후 볼드모트처럼 언급되지 않던 그 이름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스페인을 떠나 사실상 망명 상태로 벨기에 브뤼셀에 있던, 카탈루냐 지방 정당의 전 수반이자 현재 스페인에서는 정치범으로 규정되어 있는 카를레스 푸지데몬(Carles Puigdemont)이 당당하게 기자회견을 벌이면서까지 스페인 정부에 요구한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지난 카탈루냐 독립운동의 민주성을 인정할 것

카탈루냐 독립운동을 법리적으로 저지하려는 시도를 멈출 것

향후 카탈루냐 정부와의 합의에 대한 확실한 장치를 마련할 것

사실 지난 2017년 10월, 스페인 역사에 영원히 남을 카탈루냐의 독립 찬반 선거가 중앙 정부에 의해 저지된 이후,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고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던 당시 카탈루냐 정부의 핵심 구성원들은 지난 페드로 산체스 정부에 의해서 사면(indultar)되었다. 푸지데몬은 이보다 더 나아가 카탈루냐의 독립을 위한 시도 자체를 사면(amnistia)시키려는 것. 급기야 미묘하게 껄끄러운 사이였던 Junts per Cataluyna와 ERC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함께 PSOE를 압박하고, 현재 임시 정부(Gobierno en funciones)의 부총리이자 Sumar의 당 대표인 욜란다 디아즈는 급기야 벨기에에 가서 '정치범' 카를레스 푸지데몬을 만나서 대화하며 논란을 만들기도 한다.

비록 PSOE는 해당 논란에서 거리 두기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당 내부적으로 푸지데몬의 요구를 검토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더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PP당 대표 역시 Junts를 만나서 조건을 들어봤다는 것을 시인한 것. 사실상 지금의 카탈루냐 사태를 촉발시킨 정당의 대표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PP에게 급박한지와 함께 과연 Junts의 7석이 모두의 만능열쇠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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