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 (2016)

by cogus


달빛 아래에서 당신은 무슨 색으로 보이나요?




쳐다보지 못하는 아이(Don’t look at me!)


샤이론의 엄마(폴라)는 자신의 아들 샤이론에게 Don’t look at me! 라고 소리친다. 언제부턴가 어린 소년은 그 누구 하고도 눈을 마주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기 자신과도. 그것은 수줍은 성격과도 관련이 있지만, 사실은 마찰을 피하고 싶은 본능적인 방어기제다. 눈을 마주치면 마주친 상대와 대화를 하게 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존재로서든, 대화 자체로서든 상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자신을 상대가 한순간 아니꼽게 여겨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방이 적이다. 말이 없는 아이, ‘말이 없는’ 아이의 특성은 자신의 몸을 끌어안는 것처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특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어느 순간 ‘나’의 특성으로 고착화되어 있다. 여유가 없는 어른은, 특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여유가 없다’는 끈질긴 그 자의 삶의 특성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이다. 무언가를 못하는 것이 나라는 삶의 특성으로 자리 잡는다. 그렇게 되면, 다른 이들의 눈에는 자연스러움에 ‘안 한 것’,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비친다. 일일이 내 특성의 뿌리를 설명하며 해명하는 것은 너무나 귀찮다. 특히나 여유가 없는 어른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결국엔 자신에게도 해명할 수 없게 된다. 너무 많이 조용히 있었더니, 자신에게조차 떠들어대지도 않았더니, 자신이 왜 이런 모습인지 알 수 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우리 주변엔 그런 어른들이 많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삶에서 한 번쯤은 겪는 구간일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샤이론이 고개를 들어 바라볼 수 있는 상대가 생겼다. 그 사람은, 어른이지만 어른이라는 이유로 쳐다보지 말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대신 이름을 묻는다. 집요하게 묻는다. 사는 곳을 묻고, 샤이론의 머뭇거림에 이유를 붙여준다. 아 내가 지금 겁을 먹었구나. 그뿐이구나. 침묵으로 오래 응시하고 있어도 겁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샤이론이 침묵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 침묵에 케케묵은 상처가 스며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으니까. 어른은 무섭지만 왠지 이 어른은 무섭지 않다. 자신에게 언제든 해명할 수 있는, 어쩌면 스스로 특성을 고를 수 있는 어른으로 보이기도 한다. 따뜻한 그 사람의 집에는 따뜻한 어른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테레사,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언젠가 그녀는 샤이론에게, “내 집에서 고개 숙이지 마. 규칙 알잖아. 여긴 사랑과 자부심 밖에 없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 견고한 규칙 안에서라면, 누군가와 눈을 마주칠 수 있을 것 같다.



‘부재’의 대물림


아저씨 약 팔죠? 샤이론이 묻는다. 그래…. 후안이 대답한다. 우리 엄마 약 하죠? 샤이론이 다시 묻는다. 그래…. 후안이 다시 대답한다. 이내 샤이론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고 후안은 고개 숙여 운다. 아직 끝나지 않는 모순들이 지긋지긋하게 후안 자신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다시금 마주했다. 저 어린 꼬마(리틀)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게 되었다는 것에도 죄책감이 든다. 어른들의 모순을 늘 연구하고 골몰해야 하는 건 그들을 바라보는 아이였다. 그리고 풀지 못한 모순은 대물림된다.

후안이 샤이론과 처음 만난 곳은, 마약 밀매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폐가였다. 어린아이가 서성이기엔 너무나 위험한 장소라고, 후안이 말했다. 따뜻하게 말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간 샤이론은 생각해 본다. 그곳을 위험하게 만드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엄마는 왜 후안을 보자마자 문전박대했을까? 엄마는 샤이론을 지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샤이론을 지켜주기도 했었다. 공부를 하라고 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기도 한다. 후안을 매몰차게 대한 것도 지켜주기 위함이었다면, 후안은 샤이론을 지켜주지 않는 사람인 걸까? 어쩌면 자신의 마약 밀매를 도우라고 협박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후안은 샤이론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줬고, 자신의 할머니 이야기를, ‘블루’의 이야기를 해줬는데. 달빛 아래 서면 내가 파랗게 보인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려줬는데. 아아, 어른들은 복잡하다. 사랑을 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떠나기도 한다. 아주 떠나버려서 평생 메워도 모자랄 것 같은 구멍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모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아이는 끝내 모순 속에 사는 어른이 된다. 달빛 아래서, 가끔은 진심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핑크, 블루, 그리고 블랙의 이야기


왜 나한테 전화했어? 어른의 모습의 샤이론이 묻는다. 이 노래(Hello Stranger- 바바라 루이스)를 들으니까 네 생각이 났어. 어른이 된 케빈이 대답한다. 어른의 모습인 척하는 샤이론은, 너는 나를 몰라,라고 말한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다. 모순 속에서 허우적대는 어른. 내가 너를 모른다고? 케빈이 되묻는다. 음악은 흐른다. 몸을 감싸는 바닷물처럼 그저 속절없이, 음악은 그 시절 안으로 데려다 놓는다. 샤이론이 했던 말 중에 진실했던 건 한 문장 밖에 없다. ‘내 몸에 손댄 사람은 너밖에 없어.’

샤이론은 엄마의 핑크빛 방을 건너보며 자랐다. ‘핑크’의 속성이야 말로 좋든 싫든 언젠가 자신이 가져야 할 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후안을 만났다. 블루의 이야기다. 후안은 ‘블루’라는 색을 물려주었다. 바닷속이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후안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샤일론을 ‘블랙’이라고 불렀다. 그건 그 아이만 부르는 별명이었다. ‘블랙’이라는 별명이 너무나 흔하고도 낯설어서 잘 가지지 못했다가, 어느 날 그 아이와 함께 앉아 있던 해변에서 그 별명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 둘은 어둠 속에서 서로를 잘 응시했다.

어떤 색이 누군가의 특성이라고는 못 하겠다. 안 하겠다. 삶은 복잡하니까, 더 다양한 색이 되었던 장면 속의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샤이론이다. 언젠가 저 색을 모두 가졌던, 지금도 지니고 있는 샤이론이 대견하다. 그렇기에 달빛 아래에서 빛날 앞으로의 샤이론이 무슨 색일지 궁금할 뿐이다.



https://youtu.be/eYOD4ROzhjw?si=Q5WF0TRg0vTM3adN






어느 밤, 가로등빛 아래에서 잘 빛나는 노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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