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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짐니 Jan 28. 2016

7월의 런던을 마주하기 위하여

프롤로그 - 1. 방아쇠는 당겨졌다



방아쇠는 당겨졌다


스무 살의 여름, 가장 친한 친구인 예솔이가 당장 반강제적으로 영국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통보했다. 더위를 피해 자주 가던 단골 카페에서 2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중이었다. 빨대로 컵에 반쯤 차 있는 얼음 사이를 빙빙 휘저으며 영국에 대해 생각했다. '영국? 국기가 유니언 잭. 비가 많이 오는 날씨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 이것이 영국에 대해 떠오르는 전부였다. 그런데 친구의 입에서 '영국에 가게 됐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뭐랄까 강한 운명의 끌림을 느꼈다. 대학에 대한 회의감이었을까, 스무 살이 열아홉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이  참담해서였을까. 당시 나는 패기와 무기력함이 함께 존재하는 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무언가 흥미를  자극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신사의 나라로 불리는  그곳이 정말 오랜만에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로 가는 정류장을 발견한  것처럼. '가야겠구나. 가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해 겨울이 끝날 무렾 나는 무작정 휴학계를 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친구 따라 영국에 가자!


"안돼. 가야 할 이유가 없잖아."


나름의 준비과정을 거쳐 엄마에게 영국에 가겠다고 선포했을 때, 예상했던 반응이 돌아왔다. '가야 할 이유가 없다.' 맞는 말이었다. 그때의 나에겐 영국에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나는 가장 친한 친구와 유유자적 해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는 막연한 즐거움만으로 똘똘 뭉쳐있었으니까. 하지만 깐깐한 엄마의 성격을 20여 년 간 겪어 온 나도 나름 준비한 비장의 무기를 꺼내  맞섰다.

"워홀 갈 거야. 가서 알바할 수 있대! 그냥 가는 비행기 값이랑 비자 따게 어학원 비 6개월치만 내줘. 원래 한 4천만 원은 드는데 나는  천오백만 있으면 돼."

엄마의 얼굴이 냉동고속의 얼려진 북어보다 더 딱딱하게 굳었을 때 멈췄어야 했는데, 철없는 나는 엄마의 침묵을 무시하고 '아빠 차 팔면 1500만 원 나오잖아! 차가 소중해, 딸의 미래가 소중해?'라며 '아빠 차'라는 우리 집의 금기어를 꺼내고 말았다. 엄마는 곧장 주 무기였던 냉동고 속의 북어를 꺼내 나를 흠씬 두들겼다. 꽁꽁 얼어있는 북어의 눈빛은 '맞아도 싸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긴 다툼 끝에 결국 1년 휴학을 하고 알바를 하며 자급자족으로 돈을 모아 영국에 가기로 했다. 부모님의 '네가 할 수 있겠어?'라는 반응이 고까웠던 철부지는 낮에는 바리스타로, 오후에는 초등부 수학 학원 선생님으로 투잡을 뛰기 시작했다. 친구에겐 반 년만 더 기다렸다 같이 가던가, 여의치 않으면 먼저 가서  반년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사실 그때쯤엔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은 크게 중요치 않았다. 이것은 나의 운명과 자존심이 걸린 투쟁이었다. 해내고 말겠어!라고 다짐했고, 2010년 1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리고 2011년 12월 내 수중의 돈은 애초 목표 금액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이유는 뻔했다. 돈은 번 만큼 쓰게 되어있었다. 술 맛을 알게 되었고, 술을 함께 나눌 친구가 늘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이십 대의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와 술. 고작 이 두 가지 복병에 나의 영국에 가겠다는 운명적 열망은 꺾인 지 오래였다.

 '국문과인 내가 영국 가봤자 뭐해- 그리고 요즘은 스카이프도 잘된다던데, 영상통화 자주 하자! 예솔아 잘 갔다 와!' 2011년 겨울, 나는 복학계를 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사실 복학 후에도 영국이 마음속 한 구석에 고스란히 남아있긴 했다. 먼지가 쌓일 만큼 쌓인 영국에 대한 열망을 다시 꺼내게 된 건 동아리 OB 선배의 강의에서였다. 광고동아리의 신입생 시절, 존경하는 카피라이터이자 동아리 선배인 루나파크의 선배는 강의에서 곧  출판될 자신의 여행 에세이에 대해 언급했다. 삶의 전환점을 다시 찍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두고 마음속에 간직했던 도시 런던에서 일 년 정도 삶을 기록한 책이라고 했다.

 런던. 마음속에 다시 한 번 알 수 없는 울림이 울렸지만 막상 내가 그 책을 마주한 건 울림을 마주한 뒤로부터 2년 후였다. 당시 나는 삶의 풍파와, 지긋지긋한 인간관계, 나를 둘러싼 억측과 소문에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좋아하는 것들이 다시 시들시들해지려는 순간 우연히 찾은 서점에서 루나파크 선배의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를 집어 들게 되었다. '아! 그때의 그 에세이.' 반가운 마음에 앞에 몇 장을 들춰보다 바로 구매했다. 그녀가 '6년 동안'이나 시나브로 마음에 담아두었던 열망을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벅찬 감정이 휘몰아쳤다. 다시금 '가야 한다.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스무 살 때 느꼈던 강렬한 열망과는 달랐다. 당장 가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아니었지만, 당장 준비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이번엔 목표 달성을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간구했다. 그것은 교환학생이었다. 24살, 3학년 2학기, 나는 교환학생을 지원자격 마지막 학기에 사활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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