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계절과 우리의 시간
엄마, 게네 작년 여름에는 꽃 안 폈잖아.
꽃도 안 피는 거 뭐 그리 애지중지해요
초여름부터 늦여름까지 엄마는 아끼는 화분에 꽃이 안 핀다고 매일 아침 베란다를 보며 한탄했다. 청소할 때 먼지 떨이 한 번은 지나쳐도 얘들은 생명이라며 화분에 관해서는 칼같이 하던 엄마였기 때문에 나는 나대로 그 한숨이 내내 마음에 쓰였다
실망만 할 걸 걔들한테 그만 덜 신경 써요. 걔들이야 뭐 피고 지는 게 지들 인생이지
그런 잔소리에도 엄마는 생명에 관해서는 애지중지였다. 꽃이 지고 그 자리에 다시 꽃이 핀들, 엄마의 꽃이 다시 필 일이 없다는 걸. 매해 여름마다 매미가 목숨을 다해 울어도, 화분에 꽃이 안 피던 해 여름처럼 다시는 목숨이 꺼질 듯이 울 일이 없다는 걸. 그래서 엄마는 생명에 관해서 애지중지 하나보다
의 모습을 보고 시를 쓴 적이 있다. 엄마 말고도 많은 감성적인 사람들이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헤어진 옛 연인을 생각할 것이고 누구는 젊은 날을 생각하며 누군가는 인생의 꽃 필 날을 생각할 것이다. 꽃은 사람을 닮았다. 정확히 하자면 인생을 닮았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꽃으로 비유하며, 한 생애의 젊은 날에는 ‘꽃이 핀다’는 비유를 한다. 그 날 그 화분 앞에서 엄마의 눈에는 분명히 그리움이 있었다. 엄마는 엄마의 젊은 날을 회상한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왠지 그럴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는 큰 딸 이었으며 맏이였다. 그 시절의 맏이는 누구나 그랬듯이 동생들을 위해 고생했고 젊은 시절에 아빠를 만나 결혼을 했다. 상스러울 것 없는 삶. 엄마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삶을 앓아본 본인이 아니라도 그녀의 자식으로서 그녀의 삶을 알고 싶어 하며, 알고 난 이후에는 종종 그녀의 삶이 그립다. 엄마는 이제 젊은 날의 사진은 꺼내보지 않는다. 그럴 철이 지난 것일까. 대신 내가 엄마의 앨범을 정리하고 엄마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아니, 사실은 상상이 더 맞는 말이겠다. 그럴수록 더욱더 실감한다. 엄마는 꽃 같다는 사실을. 한 사람의 일생이 꽃이 피고 지는 단순한 사실에서부터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엄마 나이의 사람은 그런 계절이 수 없이 있을 거라고.
은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계절 일지도 모른다. 누구는 철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것들이 좋다. 장대하지 않은 것. 대단하지 않고 유별나지 않은 것. 나는 아직 피고 지는 것을 잘 모르니까. 나는 아직 피고 지는 단순한 그 사실에서부터 시작을 하려는 단계이니까. 그래서 우리의 대화가 대단하고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해도 꽃이 피고 지는 몇 개월 동안은 그런 계절 속에서 시시콜콜한 차 한잔과 사소한 발걸음을 맞이 하는 순간들로 채워 넣고 싶다. 나도 엄마의 계절을 닮을 때가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