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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elephant Dec 03. 2015

늙은이와 시인과 나

나는 무엇을 이야기할까.

 우중충한 월요일은 삶이 이리도 팍팍하냐고 투덜대기조차도 싫은 날이다.


 집을 나설 때 눈을 반쯤 감기게 만드는 햇살이 아닌 선글라스 낀 것처럼 한낱 어둠이 드리운 월요일은 흰 신발을 신은 내가 멋쩍고 하늘색 우산을 든 손이 부끄럽다. 우산을 두고 나오기도, 그렇다고 우산을 굳이 챙겨나오기도 애매한 날. 기상예보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얼굴은 그런 표정. 등교를 하는 학생들도 손에도 반은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우산 하나 들고 찡그린 얼굴이다.


  그런 날은 또 하루가 어찌나 긴 건지 시간이 지루하다. 그렇지만 무얼 하는지도 모르는 체 시간은 간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휙휙 바뀌는 것도 정신병이라는데, 그놈의 정신병은 뭐가 그리 다양한지. 세상에 제정신인 사람은 있기나 한 거야 라며 점심 후 커피 땡. 그 흔한 테이크아웃 커피는 바라지 않는다. 흰 종이컵에 갈색 자국이 선명한 자판기 커피. 오늘 아침 본 먹구름 같다. 어제 축구 어디가 이겼냐 하는 동료의 가벼운 말에 기분은 조금, 뭐 조금은 풀린다. 역시 사람은 입을 놀려야 돼. 가벼울수록 가볍게 놀려대는 입에 장단을 맞춰 흔들린다. 뭐 그런 거지.




 퇴근 후 맥주 한 잔.


 아니 오늘은 그냥 스타벅스 커피 한 잔으로 참자. 습한 날에는 취기가 몸도 마음도 질척이게 하니까. 시원한 아이스커피로 하자. 응당 커피숍이란 수다를 떨기에 최적의 장소, 오늘은 내 입에 수다가 없는 날이니까. 허한 탁자 위에 책 한 권  올려놓고 커피를 받아온다. 대여섯 장  내리읽고 읽는 둥 마는 둥 한다. 책을 쓴 시인은 여행 가이며 사진작가이며 때로는 동네 아저씨이다. 나는 그냥 동네 아저씨이다.




 별안간 대수롭지 않게 커피 반잔쯤 마셨을 때 출입문 종소리가 울리며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온다. 누가 봐도 커피숍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 차림이야 뭐 그렇다 치자. 하려는 차에 무지막지한 목소리로


"커피 한 잔줘!"


하며  빈자리에 앉는다. 점원은 당황하지 않고 할아버지에게 가서 주문을 한다.


"할아버지 따듯한 거로 드려요 차가운 거로 드려요?"

"이 날씨에 무신 뜨거운 거, 차가운 거로 줘 차가운 거!"

"그럼 결제 먼저 해드릴게요."


이내 곧  예상했던 질문이 훅 치고 들어온다.


"커피 한 잔이 뭐 이리 비싸!"


 그래 그렇지, 점원이 당황했다!


"우이 씨, 쐬에주 댓 병 인디이. 월세도 올랐는디. 안 마셔, 돈 도로 내놔!"


점원은 샷을 뽑아 내리다 말고 할아버지의 꼬깃꼬깃한 오천 원을 돌려준다.


"담부턴 이천 원에 팔아!"






 잠깐의 해프닝이 있고 더 이상 집중할 수 없어 커피숍을 나왔다. 커피숍을 나올 때 까지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아침에 탄 버스를 타고, 아침에 건넜던 사거리를 건넌다. 현관문을 열 때, 나는 번호키를 누르다 말았다.


아, 할아버지.


상상을 해보자. 할아버지가 집을 나설 때 할머니는 한  소리했을 것이다.


"오늘도 취해서 들어오기만 해봐요"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쓴소리가 생각나 마트에서 소주 두어 병 집어 들다 말고 평소 가보지도 않던 커피숍에 들렀을 것이다. 소주 한 잔이나 커피 한 잔이나 넘어가는 길이 쓴 것은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그래서 소주 대신 커피를 택했다.  그런 고로 할아버지는 대단한 로맨티시스트였으며  초현실주의자이며 또한 프랜차이즈 커피 가격에 일침을 가하는 사회혁명가인 동시에 커피를 이 천 원에 팔라는 말도 안 되는 고집을 가진 동네 할아버지였다.


 잠깐의 생각을 마치며 나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셔츠를 벗다 말고 소파에 누워 다시 생각한다.


 커피숍에서 들췄던 책의 저자인 시인과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한다.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한다. 짧지만 가벼우며 깊은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상황을 마주한다. 가볍고도 긴 상황을 마주하는가 하면 또 무겁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지기도 한다. 나는 늘 나 자신에게 상황에 대하여 얘기한다. 상황에 대해 기억하려 애쓴다. 상황에 따라 기분을 붙잡아 두고는 더 나아갈 길을 지체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삶의 상황들을 통해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이가 인 것이다. 나는 값싼 감정 놀음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렴 어때 오늘은 이대로 잠에 들자.


 나에게 커피 자국이 우중충한 먹구름이라면 할아버지에게 소주 한 잔은 가벼운 입놀림이었을까. 내일은 나도 동네 포차에서 소주 한 잔 기울여 볼까. 소주가 왜 이리  싸!라고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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