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쥬 Mar 22. 2024

엄마와 나, 우리는 왜 그러는 걸까

미스터리하게 두터운 사랑과 신뢰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 아이는 분명 내가 오기 전까지 잘 놀았다는데,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하루에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를 끌어모아 짜증을 내곤 한다.


“잘 놀고 있었는데, 왜 엄마만 오면 돌변하지? “


친정엄마는 항상 이유가 궁금하다. 하지만, 난 알 것 같다. 내 아이에게서 어린 시절의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줄곧 엄마를 나의 감정쓰레기통으로 삼아  수많은 짜증을 쏟아부었던 나쁜 딸이었다. 엄마에게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을 표출하며 나는 항상 생각했다.


도대체 엄마와 나 사이에는 어떤 시간이 누적됐길래 엄마라는 존재가 나에게 이리도 무해할까. 이리 못되게 엄마에게 내 감정을 털어 넣어도 엄마가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무한한 확신과 신뢰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이런 나의 궁금증의 실타래는 아이를 낳은 이후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 이 무한한 신뢰 관계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엄마가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이 확신이 디폴트값으로 내 안에 자리 잡은 이유, 그것은 내가 작은 생명체였던 시절부터 엄마는 내 유일한 세상이자 나의 온 우주였기 때문이다.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아이가 그러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작은 생명체는 엄마의 손길에 의지한 채 하루를 시작한다. 엄마에게 의지하여 밥을 먹고 잠을 잔다. 오줌을 누고 똥을 싸고 눈을 껌뻑이며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엄마의 사랑이 닿지 않는 순간이 있다면 울음을 터트려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사랑해 달라고, 당신 없이는 나는 살아갈 수 없다고 목놓아 소리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런 표정과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 작은 생명체에게 엄마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나는 온몸과 마음을 다해 이 생명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런 고귀한 노력의 시간이 동일한 규칙으로 나의 엄마와 나 사이에 누적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른이 된 나의 세계에는 이제 엄마 말고도 수많은 다른 등장인물이 생겼지만 엄마는 여전히 내 세계 속에 무한 신뢰를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그러니 아직도 난 힘들고 불편한 감정을 엄마에게 표현한다. 마치 작은 생명체이었던 시절 내가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엄마와 떨어지면 온 세상을 잃은 것만 같았던 나의 유년 시절처럼 말이다.


오늘도 엄마는 나의 집, 나의 부엌에서 나의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여전히 엄마는 나를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세계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엄마를 나의 감정 쓰레기통 삼아 쏟아붓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 내 아이의 감정 쓰레기통을 자처하고 있다. 내 엄마가 두 눈 질끈 감고 딸의 감정을 소화해 준 것처럼.


엄마 없이 힘들게 사회생활하고 돌아온 7살 아들의 노곤함을 받아주는 평화로운 세상이 내 아들에게 나도 되어주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