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걸 다 가르쳐야 하는 부모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역사를 다시 곱씹어보는 과정과 같다. 내가 독립인간이 되기까지 인내심 강한 어른의 가르침이 끊임없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엄마, 나는 어떻게 한글을 뗀 거야?”
한글 떼기가 시급한 우리 7살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새삼 우리 부모님이 대단해 보여 엄마에게 물었다.
“너는 알아서 뗀 거 같은데?”
하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나를 독립인간으로 키워놓고 정작 본인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질문을 할 때마다 우리 부모님은 "너는 알아서 했는데?"라며 상황을 모면한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내가 인생 2회 차가 아니고서야 알아서 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숟가락으로 밥 먹는 방법, 빨대로 물 마시는 방법, 변기에 앉아 대소변을 보는 방법 (소변으로 시작해서 서서히 대변도 변기에서 할 수 있도록 훈련이 필요하다.) , 손 닦는 방법, 젓가락 사용방법, 칫솔질하는 방법, 한글을 읽고 쓰는 방법 등
아이를 키우며 깨달았다. 나 혼자 알아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슈퍼히어로의 똥 닦는 방법'
버스 플랫폼에서 가족뮤지컬 홍보 팸플릿이 눈에 확 꽂혔다. 마침 우리 아들도 슬슬 스스로 똥 닦는 방법을 배워야 할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는 확실한 동기가 있을 때 움직이는 법이다. 아이에게 동기부여를 하기위해 곧바로 나는 뮤지컬을 예매했다.
이 뮤지컬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멋지고 힘센 슈퍼히어로가 똥을 닦지 않은 팬티를 입고 다니다가 사람들에게 큰 창피를 당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다가 전단지에 ‘똥닦도사’가 똥 닦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홍보를 보고 도사를 만난다. 이 도사에게 똥 닦는 방법을 배운 후 슈퍼 히어로의 명예는 다시 회복된다.
남편과 나는 뮤지컬의 유치함에 항마력이 매우 딸려 손발이 잘 펴지질 않았다. 하지만 함께 뮤지컬을 관람하고 있는 귀여운 꼬맹이들은 슈퍼히어로가 똥을 닦지
못해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자 눈물을 뚝뚝 흘리기까지 했다.
관람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관람 후 1주일 후였다. 내가 아이의 대변을 여느 때처럼 닦아주려고 하자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엄마? 내가 닦아볼게.”
서툰 작은 손으로 휴지를 돌돌 말고 배운 대로 시도를 했다. 똥닦도사님에게 배운 똥 닦는 권법을 줄줄이 외우고 있었다.
아직은 많이 서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언제 어떻게 똥 닦는 방법을 배웠을까?
우리 엄마, 아빠는 내게 정말 별 걸 다 가르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