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쥬 Jul 12. 2024

그가 열어버린 마음의 문

어둡고 힘들었던 시절에 관하여

그의 정성스러운 사전 준비에도 불구하고 첫 만남 장소였던 이탈리안 식당의 메뉴는 정말 맛이 없었다.


식전빵은 인원수에 맞게 종류별로 1개씩 나왔는데 맛없는 빵과 ‘맛있어 보이는 피자빵‘이 나왔다.


나는 맛없는 빵을 한입 베어 물고는 너무 맛이 없어 피자빵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순식간에 내 피자빵을 그에게 도둑맞았다. 그에게 피자빵을 달라는 말을 건넬 새도 없이 그가 내 피자빵을 꿀꺽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의 미움을 사지 못했다. 그와 함께한 시간이 피자빵 2개를 속시원히 내어줄 만큼 달콤했다. 맛없는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어줄 만큼 그는 또 만나보고 싶은 남자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던 시점, 내 인생은 바닥을 찍었다. 어느 것 하나 순조롭지 않았다. 부모님의 사업이 어려워졌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이혼얘기가 오갔다. 살던 집은 빚을 갚는데 팔려나갔고, 나와 엄마는 갈 곳이 없어 외삼촌 집에 머물렀다. 나는 점점 무너졌다. 자신감 있고 패기 넘치던 나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단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은 사치였다. 취업을 하고 엄마와 월세방에 살기 시작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것 만으로 벅찬 청년가장의 현실이 내게 들이닥쳤다.


사회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포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나를 더 망가뜨렸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내 현실을 오픈하지 못했다. 내 처지가 마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나는 내 현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부정’의 심리 단계였다.


얕고 넓은 관계는 그럭저럭 이어갔지만, 깊은 관계는 늘 어긋났다. 내 마음 한편 고통받고 있는 한자리를 쉽사리 상대방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그때 만난 모든 인연이 나를 비켜갔다.


속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관계는 깊어지기는커녕 계속 겉돌기만 했다. 내가 상대에게 감추고 싶은 진실은 무엇일까,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은 무엇일까.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늘 생각했다.


먼저 난 내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인정해야 했다. 그게 내가 다시 온전한 나로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남편은 방어기제로 굳게 잠가버린 나의 마음을 무장해제시켰다.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나. 하나님이 알려주셨나.


그는 굳게 닫혀버린 첫 번째 내 비밀의 문을 열었다. 그것도 첫 만남에!

매거진의 이전글 까다로운 3가지 조건에 모두 충족한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