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과제는 가뭄에 단비
아이디어로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배가 고프다. 예비 창업자 과제에 선정되어 받은 1,500만원 상금은 서비스 랜딩페이지 제작과 제대로된 투자 심의용 사업계획서 작성의 컨설팅 비용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이 사업계획서로 개발 지원 과제를 수주하여 약 5천만원 정도를 수혈받았지만 이 개발비는 이전에 말했듯이 서비스 오픈도 못한 외주 개발로 날려먹었다. 결국 우리에게 희망을 심어준 정부 지원금은 순진하게 아이디어만 갖고 시작하는 스타트업을 노리는 각종 컨설팅 업체, 개발 외주 업체들에게 고스란히 뜯기고 우리는 굶주린 좀비처럼 또 다른 정부과제를 찾아 나섰다. 이번엔 초기 창업자에게 지원하는 R&D과제에 도전했다. 규모가 큰 지원과제는 도와주는 컨설턴트들이 있다. 대부분 창업정부과제 심사를 하다가 정부과제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을 상대로 비밀리에 코치(?)를 해주는 컨설턴트였는데 그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약 2억짜리 정부과제를 수주했다.
꼴딱 꼴딱 숨이 넘어가던 우리에겐 새로운 희망이었다. 사실상 일반인 창업자가 창업 초기에 투자를 받기란 매우 힘들다. 카카오나 네이버 출신 CTO가 있다거나, 이미 스타트업을 한번 이상 창업했다가 대기업에 인수하고 새로운 창업을 한 유명한 창업자이거나, 스타트업 업계 인맥이 어마어마하게 좋지 않은 한 초기 엔젤투자를 받는 건 쉽지 않다.
운이 좋은 스타트업이라면 제대로된 투자를 받기 전까지는 정부과제로 근근히 버티면서 서비스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투자를 받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서비스도 여러 벤처 투자 업체에 소개를 하면서 가능성은 보여줬지만 투자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플랫폼이긴 한데 수익모델에서 얻을 수 있는 수수료가 미미했고, 규제도 매우 강한 시장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전통 산업이다 보니 서비스 확대 방향성이 트렌드하지 못 했던 거 같다.
여튼 당시 과제 계획서 작성을 내가 담당했는데 나는 이전 회사에서 정부과제를 수주했던 경험도 있고 나름 코치가 있다보니 사업계획서 작성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고, 수주로까지 이어졌다.
당장 담달 월급이 걱정이었던 상황에서 2억 R&D 과제 수주는 우리에게 단비같은 기회였다. 과제계획서도 우리가 개발할 방향에 맞춰 작성해서 개발도 하고 운영비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아는 개발 업체를 참여업체로 등록해서 서비스를 새롭게 개발하고 개발자도 채용해서 1년간 월급걱정없이 지낼 수 있었다. 보통 창업자들은 예비 창업자 지원 사업, 창업 초기 지원 사업, 창업 R&D 지원 사업 등을 거쳐 최고의 정점은 TIPS로 선정되어 약 5억 정도의 정부 지원금을 받는게 수순인 듯 하다. 아마 지금은 또 많이 바뀌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까지 살아남아서 죽음의 계곡을 넘어 서비스가 안정화 되고 수익성을 보여 준다면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초기 예비창업에서 선정되도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면 그저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다시 취업을 해서 창업하면서 진 빚을 갚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최근 정부 자금이 풀리고, 투자 분위기도 좋아서 많은 창업자가 생기고 많은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마 그 이면에는 많은 창업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지금도 나도 '당근'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새로운 시작에 도전할 텐데 다양한 정부자금을 활용해서 죽음의 계곡을 넘으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