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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이 감옥이 아닌 체리토핑이 되려면

장점을 뺀 나머지 부분도 괜찮다는 걸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매력 있는 사람, ㅇㅇ한 사람', 보통 칭찬으로 듣게 되는 참 좋은 말들이다.

하지만 그 말에 갇히게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좋은 점 외에 다른 모습들이 보이면 처음에는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떠날 거라는 믿음’은

누군가에게 나의 장점이 부각되면 그 모습을 더 강화시키는 모습으로 발현되고,

‘정제되지 않은 면을 보이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는 생각’은 스스로를 고도로 문명화시키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 태도가 상대방에게 미묘하게 긴장감을 주고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관계 속에서 책임을 지기 위해,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언제든 잠재적으로 쓰임새 있는 사람이기 위해,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좋은 상태’, ‘예쁜 모습’, ‘설레는 버전의 나'로 유지하며 교류해야지. 그게 왜?


일을 하든 가족과 있든, 언제나 어떠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편에 있었던 입장에서

처음에는 저게 뭐가 잘못 됐는지 이해가 안 됐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당연히 좋은 버전의 나를 보여줘야 하고 너무 피곤해서 말도 잘 못하고 툴툴댈 때도, 슬퍼서 주저앉아 울고 있을 때도, 열정이 꺼져 있는 날도 '그건 내가 알아서 소화해야지 상대방에게 왜 전가를 해? 관계로 돌아올 때는 정리하고 와야지'라고 생각했었다.

풀어짐은 ‘관계 바깥’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꼭 우리네 아빠들 모습 같기도 하고.)


난 그게 관계 속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떤 면에서 그런 태도가 가식일 수도 있고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 일 수도 있지만, 나의 감정을 책임지고 추스르려던 책임감이자 좋은 컨디션으로 상대와의 관계에 임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만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피곤해서 못하겠다가 반복되던 어느 날,

'관계란 원래 이렇게 긴장을 계속해야 하는 건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게 아니라는 결론과 함께 늘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좀 흐트러져도 괜찮아. 삑사리도 내. 네가 한껏 능력 있고 여유 있을 때만 사랑받는 게 아니야.'

어떻게 보면 참 당연한 말을 믿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려고 여전히 좌충우돌 중인데 서툰 시도들을 받아줘서 고맙기도 하다.


지난주 요정재형 윤계상 편(링크)을 보면서 나의 전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가지는 안정감을 다시금 느꼈다. 예쁜 체리 토핑만이 아니라 케이크 부스러기까지 끌어안으며 보여주는 과정을 자연스레 잘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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