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산책 김진 <그림 읽는 법>
예술의 세계엔 보편이 통하지 않는다. 애초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나의 작품을 두고도 저마다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나눈다. 정답은 없지만 저마다의 답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는 작품을 바라볼 때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일이 수반돼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때는 앎이 봄에 미치는 영향과 그 봄이 다시 앎에 미치는 영향이 무척 크다.
나는 예술의 세계에서 줄곧 기계를 공부해 왔다. 때때로 예술을 예술 그 자체로 다뤄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으나 첫밗을 떼는 일이 쉽지 않았다. 수치로 증명하는 기계는 결국 정답이 정해진 영역이다. 사진 한 장을 바라보더라도 어떤 원리의 촬영 기술로 완성한 답이구나, 풀이를 써내려 가 결론을 내리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기계를 위한 글을 쓰는 삶을 내려놓고 나니 예술은 너무도 어려운 영역이 됐다. 앎의 범위도, 앎을 봄에 적용하는 방법도 달랐다. 서양미술사나 사진사 서적을 찾아보고 유튜브를 검색해 지식을 쌓아가도 지지부진. 국사나 근현대사를 공부할 때처럼 연표를 끼고 달달 외워보자 욕심을 부려도 봤다. 다만 이는 아차 하는 순간 백지가 되기 일쑤였고 곧 숙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사실 이 부분은 물리적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해 준다지만 예술은 역사나 증명된 사실 외에도 이에 기반한 생각의 연결고리가 필요했다. 얼마만큼 아는지가 보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기계와 다를 바 없지만 어떻게 바라볼지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예술산책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김진 작가의 <그림 읽는 법>을 만났다. 예술 작품은 그 시대를 살아온 창작자의 심리, 정신적인 표현 그 자체다. 역사적, 사회적 흐름 속에서 인간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행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때문에 작품을 읽는 일차적인 방법은 역사적 사회적 흐름을 알고 이에 기대 작가가 작품 속에 남겨 놓은 언어를 찾는 것이다. 이는 수많은 미술 서적에서 제시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고. <그림 읽는 법>은 한 발 더 나아가 작품을 보며 우리가 느꼈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꼬집고 읽는 이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를 테면 뭉크, 퓌슬리, 클림트 등 유명 작품을 바라볼 때 우리가 느끼는 아름답다와 숭고는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고 왜 작품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를 말한다. 새로운 작품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이전의 봄과 앎을 통해 스스로 감정을 짚어볼 수 있도록. 또 각각의 챕터는 다른 작품을 설명하고 있지만 질문을 던지고 답을 같이 찾아가는 과정에서 결국 모든 미술 작품은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는 파리 유학 당시 그가 경험했던 수업 방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김진 작가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그림 읽는 법>은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훑으며 작가의 생애, 환경, 심리를 넘나 든다. 읽다 보면 김진 작가의 앎의 범위가 얼마나 방대한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수많은 서적과 파리 유학 당시 수업 노트를 몇 번이고 돌려보며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체화하고 써 내려간 이야기는 늪지대처럼 나도 모르는 새에 그림과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한 권으로 끝나버린 게 아쉬울 정도. 다만 이 책을 통해 그가 운영하는 예술산책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한다. 또 다른 소통의 창구가 있다는 건 그의 그림 읽는 법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