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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Dec 24. 2023

제품은 사람으로부터 출발한다

도널드 노먼 <도널드 노먼의 사용자 중심 디자인>



몇 해 전 후지필름 카메라의 사용자 커뮤니티가 떠들썩했다. 디지털 제품이지만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X-Pro 시리즈의 3세대 제품이 출시된 것. 기술은 늘 인간의 속도를 넘어섰고 디지털카메라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X-Pro3가 출시될 당시는 카메라가 찍는 이의 편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할수록 복잡한 전자기기로 변모한다는 평이 오갈 때였다. 디지털카메라는 최신 기능을 총망라한 플래그십 제품으로 상위 호환되고 있었고 실제로 많은 사진가가 자신이 사용하는 카메라의 기능을 100% 활용하지 못했다. 심지어 매뉴얼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떤 기능인지 아리송하거나 있는지조차 모르는 기능이 있을 정도. 도널드 노먼의 말처럼 인간이 기계에 맞추어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의 경험에서 비롯한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품의 가격만 높이는 과도한 기술은 오히려 일반 소비자의 관심을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부른다.



다시 X-Pro3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후지필름이 추구하는 아날로그는 오래전 출시된 필름 카메라에 있다. 필름을 넣고 와인더를 감아 노출과 초점을 조절하고 사진을 촬영한다. 단순하지만 찍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후지필름의 X-Pro 시리즈는 필름 카메라의 파인더와 조작부를 닮아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손으로 감각해 직관적으로 촬영하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을 가졌다. 이 시리즈는 3세대로 오면서 외관의 다이얼을 극도로 최소화했다. 불필요한 조작을 줄여 사진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겠다는 브랜드의 의지가 컸다. 또한 사진 촬영 후 결과물을 바로 확인 가능한 LCD 모니터를 감췄다. 디지털의 장점을 취하되 습관적으로 찍고 확인하고 지우고 다시 찍는 행위에 제약을 줘 촬영의 본질에 더 다가가게 했다. LCD 모니터가 사라진 후면부에는 필름 종이 박스를 찢어 넣어 필름 감도를 확인하던 필름 카메라의 홀더를 상기시키는 서브 LCD를 넣었다. 필름을 고르듯 디지털 색감을 골라 촬영하는 후지필름 사용자의 니즈를 반영한 선택이자 일종의 유머다. 굳이 없어도 될 창이지만 이 한 끗 차이는 많은 사용자가 2세대 모델에서 기변을 결정하는 키가 됐다. 도널드 노먼의 그래프에서 기술이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기 시작하는 시작하는 시발점을 넘어선 후기 사용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 이처럼 제품과 사용자가 상호보완적 관계가 될 때 기계를 필요성은 높아지고 사용자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도널드 노먼의 사용자 중심 디자인>은 UX 이론을 정립한 도널드 노먼 교수가 디지털 제품을 중심으로 쓴 첫 번째 책이자 사용자 중심 개발을 다룬 최초의 책이다. 출간된 지 꽤 오래된 책임에도 앞서 설명한 후지필름 X-Pro3처럼 최근에 출시된 디지털 제품에도 그의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 이유는 제품은 사람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 사용자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불변의 법칙이 언제까지고 유효하기 때문일 터. 놀라운 사실은 이 책에서 그가 예측했던 디지털 제품의 미래는 오늘날 대부분 현실이 되었고 일부는 현재도 개발이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4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이 책에 기술된 그의 디자인 철학과 디지털의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을 읽다 보면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제품 너머의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돌고 돌아 내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제품은 나의 편의를 고려한 제품 제작자들의 고민이 맺은 결실이라는 결론에 닿는다. 




*유엑스리뷰어 9기로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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