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 문학과 지성사
언젠가, 보고 싶었던 책을 '나중에 사지, 나중에 사지.'하고 미루다가 절판이 되어서 답답하고 속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읽지 못하고 미뤄두더라도 보고 싶은 책은 그때그때 사는 습관을 붙였습니다. 가끔 그 덕을 보기도 하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책을 보고 줄거리를 정리하려고 알라딘에 들어가 봤더니 그새 절판이 되어 있더군요. 좋은 책이 이렇게 절판이 되면 아쉽고 섭섭합니다.
2016년이 준 첫번째 선물인 1~3일 연휴를 맞아 벼르고 벼르던 이 책을 꺼내 읽었습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의 점이지대인 북간도(연변, 동만)를 배경으로, 조선과 중국의 항일 전사들의 유격구 활동과 당시 간도를 주축으로 한 민족해방운동진영을 벌집 쑤시듯 뒤흔들어놓았던 '민생단'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장편소설
- 알라딘 책소개 중
입니다. 좋은 소설이라는 추천에 2013년 7월에 이 책을 구매했는데, '민생단' 사건이라는 낯선 주제에 차일피일 미뤄놓고 있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나니 이 '민생단'사건이라는 것이 낯설기도 하지만, '선과 악'이나 '옳고 그름'이 모호한 사건이라 역사보다는 오히려 소설이라는 매체가 이 사건을 다루기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김연수님이 워낙 잘 쓰셨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최근에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농사의 스트레스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대규모 정치사회 체제의 토대였다. 슬프게도 부지런한 농부들은 그렇게 힘들여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톡 원하던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슬프게도 얻지 못했다.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왕궁과 성채, 기념물과 사원을 지었다.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라고 했습니다. 역사책에는 그 극소수의 사람이 기록되지만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은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각자의 신념에 따라 땅에 피를 쏟으며 살고, 죽었고, 그들 개개인의 신념이 이리저리 뒤엉켜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혼돈의 와중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요. 자신의 길이 옳은 것인지, 목숨을 내던질 가치가 있는 것인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도망치는 것이 현명한 것이었는지. 이들의 고민은 한없이 개인적인 것이었겠지만, 그들의 그런 고민들이 모여 역사를 만들었고, 우리는 그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겠죠.
그리고 지금의 우리 역시 후대가 살아갈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하나하나의 신념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 역사의 흐름 속 어느 곳에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가끔은 삶에서 머리를 들고 주변 사회를 둘러봐야하지 않을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