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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짱 Oct 15. 2020

만추를 보고서

어지간히도 심심했는지, 영화라도 볼까 하면서 외장하드를 뒤져보았다. 나는 이런 유의 영화를 잘 보질 않는데, 이게 외장하드에 왜 있는지도 모르겠다. 본 기억이 있는 것도 같긴 한데, 그 기억도 믿을 순 없다.

어쨌거나 만추가 있었다. 왠지 보기 꺼려졌지만, the first time과 한참을 저울질하다가 the first time은 여러 번 봤기에 만추를 틀었다. 영화의 색감만 봐도 왠지 지루 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이렇게 무게 잡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내가 집에서 영활 보면서 한 번만 끊어 본건 꽤 오랜만이었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스토리는 굳이.. 어쨌거나 꽤 몰입해서 보았다. 일단 탕웨이가 이쁘고, 현빈이 멋있다. 색감과 캐릭터, 캐릭터의 코디도 찰떡이더라

보는 내내 흔한 말로 고구마만 먹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에 대해 포기한듯한 애나의 표정은 내내 이어졌다. 아마 긴 수감 생활 동안 스스로에게 계속 되물었을 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자문에 지쳐서 포기한 것 같았다. 애나는 아마 첫 장면 그 이전부터, 아주 예전부터 마음을 누르고 살았을 것 같았다.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인 남의 포크를 왜 썼냐는 장면도 그다지 시원하진 않았다. 울분을 터뜨리면서도 계속해서 누르고 누른다. 겨우 그것밖에 못 터뜨리면 어떡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보는 내내 애나가 감정을 그만 누르고 편해졌으면 하길 바랬다.

근데 먹먹하다가 끝이 났다. 조금 편해질라나 하다가 끝이 났다. 이제야 겨우 애나는 아주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고 훈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는데 끝났다.

조금은 설레는 맘으로 사 온 커피 두 잔을 찰랑거리며, 나타나지 않는 훈을 찾을 때 애나의 마음은 얼마나 불안하고 두렵고 허탈했을까..

마지막 까페 장면도 좋게 말해 여운이 남았다고 하지만, 그런 기다림을 겪어본 나는 답답했다. 맘이 아팠다.

열린 결말이니 내 맘대로 상상하자면, 훈은 안 왔을 거다. 훈이 제안한 약속이지만, 그 약속을 받아들인 건 처음부터 애나뿐이었다.

아마 순진(?) 아니 바보 같은 애나는 혼자만의 약속을 믿고 까페가 닫을 때까지 기다렸을 거다. 그리고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본인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포기할 수 있을 만큼 매일 나와 기다렸을 것 같다.

다 보고는 크레딧에 나오는 음악을 듣지도 않고 꺼버렸다. 아 먹먹하네, 괜히 봤다. 이런 글을 쓸 생각도 없었는데, 계속 생각이 나서 정리 겸 썼다.

영화 보는 눈이 영 없어서, 왜 제목이 만추 인지도 잘 모른다. 잘 만들었는지 못 만들었는지도 잘 모른다. 그냥 속이 먹먹한 이야기구나 라고 생각이 든다.

+
끝을 잘 못 맺는 편인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매우 공감했다. 나는 한번 마음을 두면 정말 오래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정리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것이 나 혼자 품은 마음일지라도..

그래서인지 말도 안 통하는 사람과의 단 하루만의 일을 가지고는, 답답하게 몇 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는 애나를 보면서 뭐라 하고 싶다. 그만 좀 하라고.. 이제 그만 좀 하고 너는 너 갈길 가면서 좀 편해지라고..

나는 지난 일을 다 털어냈다 어쨌다 하지만, 아직도 가끔씩 흔적을 볼 때면 속이 울렁거리는 나도 참 병신 같아서 화가 난다.

내 속에 아주 깊게 남은 영화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볼일은 없을 거다. 아마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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