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그로스 프로덕트(Growth Product)>에 담긴 내용을 일부 편집한 원고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세 번째 사업인 영상을 기반으로 한 인문 교양 구독 서비스를 준비할 때 저는 많은 가정을 세웠습니다. 그동안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인문 교양 분야의 사업에 도전하는 것이었고, 또한 제가 당시 ‘사명’이라 여겼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끌어올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과 자본을 투입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죠.
수십 번의 회의와 토론, 논의를 거쳐 프로젝트의 ’가설’을 완성했을 즈음 저희는 가설을 ‘확신’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주변 지인을 통해 꽤 믿을 만한 리서치 업체를 섭외했고, 이전 사업에서는 시도조차 생각하지 못했을 큰 규모의 설문조사를 했죠. 작성과 피드백, 재작성과 피드백을 반복해 설문지를 완성했고 얼마 뒤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사람들에게 던진 질문은 3가지였습니다. 평소 인문 교양 콘텐츠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인문 교양 콘텐츠에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 있다면 시간당 얼마나 지불할 의향인지 말이죠. 얼마 뒤 전달받은 조사 결과 데이터로 우리는 3가지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약 82%의 응답자가 인문 교양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경기 수도권 지역만 따져도 잠재 수요층이 약 1,000만 명 수준이었죠. 둘째, 그중에서도 인문 교양 콘텐츠에 비용 지불 의사가 있는 사람은 약 42%였습니다. 따라서 핵심 수요층은 최소 200만 명에서 최대 500만 명 수준이었죠. 셋째, 비용 지불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지불하고자 하는 금액은 시간당 약 4,500원 수준이었습니다. 최소 수준의 핵심 수요층이 매달 1시간만 콘텐츠를 보게 만들어도 월 90억 원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였죠.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시장의 10분의 1만 장악해도 연간 100억 원을 벌어들일 수 있는 사업을. 그것도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통해 할 수 있었으니 말이죠. 자신감을 얻고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럴듯한 구조의 서비스를 기획했고, 섭외 가능한 최고의 개발진을 모아서 이를 현실로 만들었죠. 물론 그 속에 담길 콘텐츠의 내용도 최상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고요. 6개월간 숨 돌릴 틈도 없이 달리고 또 달린 끝에 론칭 준비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열심히 가설을 세웠습니다. 큰 비용을 들여 타깃 사용자에게 물어보기까지 했어요.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던 걸까요? 실패에는 늘 수만 가지 이유가 따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사업에서 가장 크게 오판한 부분은 바로 ‘사람들의 진짜 필요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응답자들의 심리는 이러했습니다.
✓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
✓ 서비스의 형태와 방향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 이 사업이 어떻게 되더라도 손해 볼 일이 없다.
첫 번째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부터 살펴보죠. 저는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2016년 미국의 대선 결과를 떠올립니다.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서 평균 80~90%의 승률을 보장받고 있던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Hillary Diane Rodham Clinton 대신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이죠. 개표가 시작되자 여론조사가 보장한 승률은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선거가 끝난 뒤 전문가들은 많은 사람의 예측이 왜 실패했는지 면밀하게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지지자=인종주의자 또는 차별주의자’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적극적으로 지지자를 밝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샤이 트럼프’, 즉 자신이 선해 보이지 않을까봐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숨긴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죠.
샤이 트럼프 현상을 사회과학 이론을 토대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1966년, 독일의 사회과학자 엘레자베스 노엘레 노이만(Elisabeth Noelle-Neumann)이 발표한 <침묵의 나선 이론(Spiral of Silence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기 전 여론의 반응을 살핍니다. 특히 대중매체에서 특정 의견이 다수에게 인정받는 것처럼 보이면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를 소수라고 느끼게 되는데요. 노이만은 사람들이 다수로부터 ‘고립’되지 않기 위해 여론에 동조하는 것처럼 행세하거나 침묵해 버린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론에선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점치고 ‘도덕적 우위’를 강조하고 있으니 그와 반대되는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대신 침묵을 지키기로 한 겁니다. 물론 그 침묵이 투표장에서의 선택까지 바꾸지는 못했지만 말이죠.
제가 진행했던 설문조사도 ‘침묵의 나선 이론’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늘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에 노출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굳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 앞에서 교양 없고, 무지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 결과, 10명 중 8명이 인문 교양 콘텐츠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고, 그중 절반은 ‘기꺼이’ 돈까지 쓰겠다는 대답을 했던 겁니다. 당연히 이 대답이 응답자의 선택, 즉 서비스 결제로 이어지지도 않았고요.
두 번째 문제인 ‘서비스의 형태와 방향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는 상상력의 한계 혹은 무궁무진함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우리 머릿속에는 이미 사람들이 겪는 문제와 이를 해결해 주는 서비스의 모습이 어느 정도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설문에 응답하는 사람의 상황은 다릅니다. 우리의 문제의식을 공유받지도 못한 채 질문 공세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죠. 충분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동원하여 설명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을 받는 입장에선 정보를 많이 제공해도 짧은 시간에 맥락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하죠. 게다가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대부분 선거 후보 중 누구를 찍을지, 이 콜라가 맛이 좋은지 저 콜라가 맛이 좋은지 같은 객관식 질문보다 복잡하고 생각할 여지가 큰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이 사업이 어떻게 되더라도 손해 볼 일이 없다’는 설문조사 데이터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한계입니다. 서비스가 실패해도 그들은 아무것도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동전 한 푼 낸 적 없으니 말이죠. 손해 볼 것이 없다는 말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날 기분이 꽤 좋아서 긍정적인 평가를 해도, 반대로 기분이 좋지 않아서 부정적인 평가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죠.
만약 반대로 조사 대상자가 설문의 결과를 통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있는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요? 투자를 했다거나 제품을 선구매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아마 조사 결과는 사뭇 달라졌을 겁니다. “그 정도면 4,500원쯤은 낼 것 같네요.” 같은 반응이 아니라 “어휴, 제가 4,500원이나 냈는데 고작 그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요? 정신 좀 차리세요. 유튜브만 가도 볼만한 콘텐츠들이 얼마나 많은데요.”나 “내 투자금 다 날아가는 꼴 보기 전에 사업 기획부터 다시 하시죠?” 같은 적극적인 반응이 나왔을 테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