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브런치 서랍에 첫 글을 넣어 놓았던 날,
내 작은 변화는 아마도 5년 전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유난히 매서운 시기였다. 홀수 연차로 찾아온다는 사회 초년생의 회사 슬럼프였을까. 월급과 등가교환하여 생각하는 법을 반납한 채, 어떤 영감도 사고의 자극도 받지 못했던 한 동안 지극히 메마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게 바로 '인생학교'였다. 인생에도 학교가 필요하다며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세운 어른을 위한 학교. 국내에는 손미나 작가가 이태원 초입에 인생학교를 열었는데, 이를테면 '나 자신을 잘 아는 법'이라든지 '사교적인 사람이 되는 법'과 같은 자기계발서적인 주제의 일회성 클래스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오글거리는 주제를 처음 보는 사람들과 듣고 이야기해야 한다니. 평소 같았음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을 나지만, 그때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무엇이든 내 가슴에 미세한 스파크라도 튀게 해 주길 바랐다. 팩트만으로 둘러싸여 건조해진 뇌를 어떤 종류라도 좋으니 드라마틱한 감각으로 자극하고 싶었다. 그리고 대학 시절부터 선망했던 손미나 작가가 교장선생님이라니 못 믿어도 고다.
퇴근길 칼바람을 뚫고 찾아갔던 인생학교. 어색하고 멀뚱멀뚱하던 그 공기만은 아직도 생각난다. 한 잡지 에디터의 클래스였는데, 주제도 내용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예상대로 오글거렸고 뻘쭘했고 아마도 또다시 그곳을 찾는 일은 절대 없을 듯하다. 하지만 나는 분명 그날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꽝꽝 언 얼음 조각에 뜨거운 커피 한 방울이 똑하고 떨어지듯, 냉랭했던 마음 한 구석이 분명 찔끔 녹았다.
클래스는 밤늦게 끝났고, 이태원 한 복판에서 택시가 잡힐 리는 만무했다. 30분 정도, 집까지 걷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생각했던 느낌만은 여전하다. 차가운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묵은 생각들을 뱉어냈다. 왠지 모르게 개운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고, 다음 날에도 나는 똑같이 출근하고 4년여를 그렇게 더 보냈지만, 희한하게도 그날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란 생각마저 든다. 아마도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던 그 심정, 억지로라도 온기를 찾아갔던 그 마음이, 온통 바깥으로만 향해 있던 시선을 다시 내 안으로 되돌려 놓았던 건 아니었을지.
나는 분명 그날 알았던 것 같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시작됐다는 것을.
브런치에 썼던 첫 번째 글. 작가의 서랍에 꽁꽁 넣어두었던 그날의 메모를 덧붙인다.
2015년 11월 26일.
의도치 않게 밤거리를 걸었다. 1년 새 낯설어진 칼바람에 코가 매웠지만 찬 공기에 정신이 명료해지자 좀 더 듬뿍 마시고 싶었다.
길가에 쌓인 낡은 낙엽들이 보였다. 때 이른 눈발이 여전히 흩날리던 중이었다. 한없이 가벼운 눈발들이 채 낙엽과 부딪치지 못하고 중간 어디쯤에서 내 시야를 벗어났다.
초저녁, 해와 달이 양 쪽에 떠 있는 그즈음의 시간을 떠올렸다. 지는 것과 떠오르는 것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교차점. 시작했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났기에 시작되는 양, 오히려 그것이 더욱 순리인 것처럼 생각됐다.
'시작과 끝'보다 '끝과 시작'이 더 익숙해질, 그런 나이라거나 과정이라거나 단계라거나 그러한 인생의 점 위에 서 있다. 어려운 것은, 그동안의 시작은 의지보다는 당위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겪어야 할 끝들은 오로지 내 의지에 의지할 것이란 부담감이다. 또는 두려움이다.
그럼에도 끝내야 할 것이라는 불안한 용기는,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끝내지 않으면 그 어떤 시작도 모른 채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낡은 낙엽과 이른 눈을 바라보며, 해가 지기 전 달이 떠오른 그 시간을 생각하며, 다행히 나에게도 끝과 시작이 교차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이들처럼 아주 자연스러워, 조금이 더 지난 훗날 문득 '아 그때였구나' 생각할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1년이 지나고 모든 방황이 제자리처럼 돌아왔을 때, 그때도 어김없이 무언가를 용감하게 끝낼 수 있기를 바란다. 끝은 늘 시작이고, 불확실하다는 것이야말로 현재를 살고 있다는 가장 치열한 증거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