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카츠 사태에 대한 경험자의 시선
흑돼지로 만든 고기크로켓과 수제버거
시간의 힘이란 정말 대단하네요. 일상이란 이름에 묻혀 글쓰기와 멀리한지 이리도 많은 시간이 지난 줄 몰랐습니다. 저는 '애월감성'이란 이름을 달고여전히 제주 경마장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 백종원의 볼카츠 이슈가 뜨겁습니다.
처음 볼카츠란 상표가 출시되고 프차를 모집한다고 했을 때부터 많은 생각이 들었던 터라 조금 얘기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이 볼카츠란 것을 먼저 상품화시켰던 건 저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주에서 다시 육지로 올라갔을때 제주 흑돼지로 고기고로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해서 연구했었고, 그 바탕에는 일본의 '멘치까스'가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사실 멘치까스는 우리나라 이자카야나 로바다야끼 같은 곳에서 술안주 등으로 선보이고 있기는 했습니다만, 단일품목을 내세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건 거의 없었을 때였습니다.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홍대쪽에 파는 곳이 한군데 있다 소식은 들었을 때였구요.
벌써 12년전쯤 일입니다.
고기를 갈아만든 만큼 '민찌'의 영어 발음인 '민스고로께'로 잠실 엘스 상가동 작은 가게를 열었었고 그해 여름 날씨만큼이나 뜨겁게 가게는 소위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오픈한지 며칠 만에 가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고 고기를 기본으로 한 시그니처 외 감자, 야채, 청양, 치즈의 종류별 세트는 박스채로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카드매출뿐만 아니라 현금매출도 쏠쏠해서 저녁마다 돈세는 것도 일이었던 그때는 아파트 상가인만큼 다닥다닥 붙어있던 이웃집, 앞집, 뒷집 등 튀김냄새와 줄서는 사람들로 인한 민원이 빗발쳤고 그만큼 시기와 질투도 많았더랬습니다. 불과 두달 만에 분점 제의가 들어왔고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작가의 전화를 받았으며 먹어본 즉시 배워보고 싶다고 찾아온 분들중엔 몇달간 함께 일했던 분들도 있었습니다.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제주에서 흑돼지를 항공으로 받아 반죽하고 튀긴후 줄지어 늘어놓으면 문을 열었고 다 팔리면 다시 문을 닫고 재료를 준비한후 튀겨지면 다시 문을 열기를 반복했습니다. 재료준비중일땐 닫힌 문 앞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줄이 또 늘어섰고 문을 열자마자 갓 튀긴 고로케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저녁 6시면 마감을 했고 두둑한 금고를 들고 일찍 퇴근을 했습니다. 좁은 매장이었지만 장사가 잘되는 만큼 직원들은 점심시간이면 법카를 들고 점심을 사먹었고 빵이 맛있던 근처 제과점에서 가격에 상관없이 맛있는 빵들을 간식으로 사와 함께 먹곤 했습니다. 가맹점을 문의해오는 분들의 전화가 늘 있었고, 이후 백화점에도 입점했고 서울 몇개 지역에 분점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뜨거웠던 경험은 3개월.
그리고 이후부터 매출은 눈에 띄게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반죽량이 줄기 시작했고 튀기기 무섭게 팔려나가던 고로케들도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매출이 반토막나기 시작했고 6개월후 저희는 아이템을 모두 넘겨주는 조건으로 가게를 다른 이에게 팔고 잠실을 떠났습니다. 이후 몇몇 분들의 분점 제의가 여전히 있었지만 이미 기존 분점들도 더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고 있던 상황이라 유일하게 제주 올레시장에만 전수를 했습니다.
제주는 태생이 흑돼지로 만든 아이템이었던 만큼 화제성이 오래갈 거라 생각했고, 시장통에 위치하고 있어 길거리 음식으로 적합하다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예상은 적중하여 지금도 올레시장엔 흑돼지고로케란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 계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 사업을 통해 깨달았던 건 '아이템의 한계' 였습니다.
'고기고로케'란 이름으로 마케팅을 했지만, 당시 붐이었던 고로케 시장과도 달랐던 것이 일단 여러개를 혼자 먹을수 없다는 한계였습니다. 디저트라 하기엔 고기가 주는 포만감이 무거웠고 식사라 하기엔 비쥬얼이 너무 캐쥬얼했습니다.
또한 제품의 확장성에도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분식의 경우 떡볶이에 김밥, 어묵, 튀김, 순대등 보완되는 메뉴들이 가능한데 이 품목은 음료 외엔 딱히 어울리는 메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카페에서 음료와 함께 팔기엔 튀김이란 냄새와 눅눅해지는 단점이 너무 컸습니다.
한마디로 품목 자체는 굉장히 참신하고 가성비가 훌륭했으나 지속성을 유지하기앤 그 한계가 너무도 명확했습니다.
분점들도 몇개월 버티지 못하고 철수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저희의 경우엔 가맹으로 한 것이 아닌 몇백 정도만 받고 전수창업을 해준 것이었기에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본점인 저희들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기에 그 경험은 그해 뜨거웠던 여름 정도의 기억으로만 남았습니다.
이후 김밥으로 메뉴를 바꾸면서도 꾸준히 고기고로케란 이름으로 사이드 메뉴를 이어왔지만 필리핀 사업이 좌절되고 여기저기 헤매면서 품목은 잠시 잊혀졌습니다. 제주로 재입도를 하고 낡은 농가주택을 개조해 캐쥬얼한 음식점을 하고자 했을때 다시 이 아이템을 떠올렸고 주식으로 먹을 수 있도록 보강해 새로 출시한 것이 '크로켓버거'였습니다. 빵 사이에 튀긴 고기고로케를 넣은 수제버거는 우연히 방송을 타면서 제주에서 또 한번 뜨거운 여름을 만나게 해주었으며 지금의 애월감성을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크로켓 버거로 바쁘던 제주생활 2년 후, 백종원의 볼카츠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건 이전에 저희가 했던 고기고로케와 너무나도 똑같아서 첨엔 좀 화도 나고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뭐 음식이란 게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희도 멘치까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하지만, 이 단일품목으로 가맹을 모집하고 있단 소식엔 남편과 저는 많은 우려를 했습니다.
저희가 경험한 바와 같이 이 품목은 지속성이 희박한 실패한 아이템이었으니까요. 저희는 그나마 핵심이랄 수 있는 고기를 제주의 흑돼지로 선별해서 받았기에 제품의 차별화와 품질유지가 가능했지만, 일반 돼지고기를 본사 물류에서 받아서는 품질과 이익률 면에서 답이 없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어쨌거나 가맹주들 입장에선 믿었던 매출이 안 나오니 속상하고 화가 나는 상황임엔 틀림없겠지만, 애초부터 이렇게 리스크가 많은 품목으로 가맹을 하겠다고 선뜻 오픈한 분들도 심사숙고하지 못한 책임은 있다 보여집니다.무엇보다 이런 리스크를 헤아리지 못하고 덜컥 가맹점수 늘리기에만 급급했던 더본의 대표에게 그 책임은 가장 무겁다 할 것이구요. 결론적으로 볼카츠의 사태는 어떤 지원이 들어간다 해도 아이템을 바꾸지 않는한 회복되기 힘들거라 보여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