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와의 방, 두 시간 존재의 만남
은경은 언제부터 그림을 잘 그렸어?
“워낙 은경 작가는 여러 기법을 잘 구사하는 작가이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작가예요. (…)이번에는 제가 드로잉 작업을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죠. 물론 작품에는 전혀 관여하진 않았고요.”
드로잉? 그림이 다 드로잉 아닌가? 뭐가 다르지? 그알못인 난 기획자 윤진의 말을 세세하게 알아듣진 못했다. 설명을 잘해줘서 그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만의 언어가 있어, 난 그저 내가 경험하고 떠올린 생각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한다.
모든 아기는 엄마의 몸을 찢고 세상에 나와.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해 나는 영속적인 관계라 생각한다. 영원히 연결된 존재.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인간의 유전 정보가 모계를 통해 전달하는 체계이고, 그럴 수 있는 것은 아이를 품은 사람이 아이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을 낳기 때문이다. 딸에게는 엄마의 유전 정보와 엄마의 엄마, 엄마의 엄마의 엄마…태초의 엄마에 대한 정보까지 있다. 나는 독립적인 존재, ‘나’이면서 동시에 시간과 공간에 층층이 겹쳐 쌓여 ‘모든 여성’이기도 하다. 딸의 자궁은 엄마의 자궁을 닮았다.
배아가 여성의 몸에 착상했던 순간으로 가보자. 배아는 자궁에 지속적으로 안착하기 위해 애써야 하고 외부에서 유입된 이 새로운 ‘것’을 인간의 몸은 (당연히) 침입으로 본다. 그러나 배아와 모체의 갈등은 필수불가결인 과정이다. 어떤 생명체도 자극이 없이는 그대로다. 배아가 변모해 태아가 되기 위해서는 자극이 있어야만 하고, 모체는 이 태아가 세상에 독립된 생명체로 나오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양보해야만 하는 결정을 해야만 한다. 태아는 엄마의 내장을 사방으로 밀어내며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양수에서 머물며 탯줄을 통해 엄마가 섭취한 영양을 가져온다. 그 과정에서 태아는 엄마를 본의 아니게 괴롭히기도 한다. 엄마의 내장을 밀어내다 못해 엄마가 제대로 된 영양 섭취를 못 하게 입덧을 유발하기도 한다. (입덧이 없었다면 행운이고, 먹덧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어차피 엄마가 제대로 못 먹어도 태아는 엄마에게서 영양분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태아에게 가는 손상은 크지 않다.
바야흐로 약 10개월이 지났다. 태아는 또 한 번의 변모를 시작한다. “아, 이제 슬슬 밖으로 나가볼까?” 격동의 자궁수축 시간이 지나면, 아기는 엄마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찢어발기며 나온다. 그리고 첫 울음을 터뜨리고 한동안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최근 인간의 나이 드는 과정이 아이의 성장과정을 거꾸로 밟는 과정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걷는 것이 어려워지고 기억을 잃어가고 언어를 잃어가면서 점점 씹는 것이 어려워져 유동식을 먹게 되고 결국에는 인위적이긴 하지만 탯줄처럼 목에 구멍을 뚫고 영양을 섭취하며 육체의 갇힘과 정신의 유영을 마치고 마침내 ‘없는’ 혹은 ‘다른’ 존재가 된다.) 엄마는 ‘찢긴 존재’가 되어, 상처가 아물고 내장이 제자리로 돌아와도 몸 안에 아이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엄마 또한 아기처럼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아기가 자라 아이가 되어도 한동안 자기중심적인 시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취약한 존재로 누군가의 헌신으로 보호받아야만 자랄 수 있는 존재다. 취약한 존재로서 제한되지만, 생존에 필요한 기억을 제 몸에 숨긴다. 아이에게 세상은 자신을 지켜줘야 마땅한 것으로, 극적으로 그렇지 못했을 때는 아동기 트라우마가 된다. 그건 “아빠가 나빴어.”, “엄마는 나한테 왜 그랬어?”처럼 단순하게 표현되더라도 새로운 이를 만날 때 아이의 첫 자세가 된다.
안타깝게도 엄마와 딸이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동등한 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둘 사이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켜내야만 하는 숙명을 가졌다. 엄마는 딸의 시간에서 예상치 못할 정도로 빨리, 늙고 병든 존재가 되어, 딸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엄마가 내 아이가 되는 과정을 겪어내야 한다.
나는 성인이 되어 결혼해서도 입원과 수술이 잦았고 종종 응급실을 가야 할 때도 있었으므로 엄마는 나에게 기대지 못했다.(다행스럽게도 엄마 곁에는 건장한 아들이 둘이나 있었다! 물론 딸과는 다른 결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나를 지키지 못해 찢긴 기억은 엄마와 남편이 나를 보살핀 기억으로 아물었다. 엄마와 나의 세계에는 아버지라는 큰 외벽이 있었고 우리 둘을 더 견고하게 만들었지만, 내 어린 시절 엄마는 그 외벽에서 오는 충격을 견디느라 정작 그 안에서 부서지고 있는 나를 보지 못했다. 나 또한 부서진 나를 수리하느라 늙어가는 엄마를 보지 못했다. 내가 드디어 수리가 제법 끝나 엄마에게 말을 걸었을 때, 어느새 엄마는 아이가 되어 울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엄마를 지켜야 할 때다. 그리고 이제야 알았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 또한 부서지고 찢긴 존재라는 걸.
엄마는 ‘나에게 시간을 쓰지 말고 너에게 시간을 쓰라’고 한다. 엄마는 모른다. 내가 얼마나 엄마에게 시간 쓰기를 아끼는지.
은경에 대한 내 시선-참고로, 나는 정상.
심리학을 하는 나의 시선으로 은경을 7년간 관찰한 바로는, 은경은 가끔 말을 수려하게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내적인 긴장감을 숨기려 애쓰면서 말을 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에 말할 줄 모르고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참 모르는 게 많은가 보다 했다. 나는 조금만 신나면 아는 것에 약간의 과장과 거짓을 붙여 말을 풍선처럼 만드는 타입이다. 알고 보니 은경은 그림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한 번이라도 은경의 전시회를 가봤다면, 그림이 얼마나 수다스러운지 알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은경은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이었다. 부서지고 찢긴 기억은 은경도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스스로 지키기 위한 허세를 말이나 글로 한다면, 은경은 그림으로 한다. (허세를 전술의 하나로서 허장성세와 비슷한 말로 썼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결핍을 티나지 않게 하고 오히려 괜찮아 보이게 하려고 하며 애쓰는 모습의 표현으로 사용했다.) 아, 그런데 어설픈 게 보인다. 어쩌지?
그림 밖에서 은경은 오래 허기진 채로 살면서도 유일한 소통 수단인 ‘그리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고, 더 긴 시간 은경의 엄마 유선은 마음의 빈자리를 헝겊 인형을 ‘만들기’로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반갑게도 그리기와 만드는, 두 시간의 존재가 한 공간에서 만났다. 유선과 이은경의 [생존감각-여와의 방]이 전시된 갤러리 호호에 은경의 작품들은 유선의 작품들을 감싸안고 있는 형태로 있다. 갤러리 호호는 전시 작품들을 한눈에 담을 수 없는 곳이다. 전시 공간은 거꾸로 된 ‘ㄹ’로 되어있고, 한강에서 홍제천으로, 홍제천에서 불광천으로 가듯이, 아니, 사람의 외면에서 내면으로 가듯이 작품을 보게 된다. 그 내면을 보일 때 외면보다 더 단단하게 자신을 은폐할 때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 이번 은경의 작품 배열은 내면과 외면을 오가고 있었다. 가운데 엄마 유선의 작품이 있기에 가능해 보였다. 엄마와 딸은 서로를 키우는 존재야.
남아프리카에서, 그리고 러시아에서 젊은 유선과 어린 은경을 상상해 본다. 기댈 곳을 잃은 유선은 휘청이고, 유선의 휘청거림을 민감하게 눈치챈 은경은 유선을 불안하게 바라본다. 어린 은경이 꼿꼿하게 몸을 하고 있는 건 유선의 휘청거림을 버티기 위해서다. 나마저 휘청거릴 수 없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고통으로 유선을 말라버리게 했고, 은경은 마르다못해 얇게 접힌 엄마를 품에 안고 물을 준다. 엄마가 조금 더 두꺼워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매주 서울에서 부산을 오가며.
나에게 은경에 대해 강렬하게 기억하는 건 말하지 않아도 은경의 고통이 외부에 드러날 때였다. 그전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처럼 말을 거의 하지 않고 거기 함께 있었는지도 모르게 땅에서 발을 띄우고 다니던 애가 나의 첫 책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꽃을 들고 늦게나마 SF 모임에 왔다. 최근에 은경이 말하길, 한 끼 먹을 돈으로 나에게 줄 꽃을 샀다는 거다. 은경이라면 진짜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굶는 건 본인이면서 잘 먹고 통통한 나에게 자꾸 밥 챙겨 먹으라 말하는 것도 항상 못 먹은 ‘밥’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다.
유선과 은경의 작품을 보며, 내 어린 엄마가 한 달에 한 번 내는 수업료를 안 냈다고 오해를 받아 울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 선생님은 왜 수업료를 안 냈냐고 때렸고, 집에 돌아와서는 큰외삼촌과 외할머니가 수업료를 어떻게 한 거냐며 때렸다. 어린 엄마는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며 그 오해를 작은 몸으로 받아냈다. 어른들은 가끔 아이에게 쉽게 책임을 돌리는 잔인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니깐. 75세의 엄마는 마흔이 갓 넘은 딸 앞에서 다시 그때의 어린아이가 되어 울었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나 억울했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제 오빠도, 엄마도 없네.”
수십 번은 더 들은 얘기인데도 그 날은 기적처럼 엄마에게서 어린 엄마가 보였다. 그 어린아이가 맞고 우는 것밖에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린 엄마를 안고 함께 울었다. 그 이후로 날 지키지 않았다고 엄마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는 영원히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아버지까지도.
그래도 내 책은 계속 사줘.
은경은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고 내 책이 출간될 때마다 내 책을 여러 권 사서 친구들에게 보낸다. 나는 은경이 그림을 잘 그리는 걸 모르고 은경의 그림들을 봐오곤 했다. 은경의 그림은 비싸서 내가 살 수도 없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으로 은경이 유선과 하는 전시에서 은경의 그림 대신 유선의 인형을 샀다. 애초에 살 돈도 없었지만, 은경의 작품을 산 것보다 맘에 들었다. 보진 못했지만, 어린 은경보다 이 인형이 더 귀여울 것 같다.
잇츠포유

이 글은 은경에게 전하는 내 선물이다.
이름 속에 ‘ㅇ’을 가지고 있는 유선과 은경. 그래서 전시회 제목도 ㅇ을 써서 ‘여와의 방’이니? (농담이야. 내 앞에 있었다면 드립이 성공했을텐데, 글로는 어렵네.)
내 글로 은경이 이제는 뚱한 표정으로 다리는 그만 벌리고 말린 어깨를 펴고 호탕하게 웃기를. 안녕, 내 친구 은경! 나, 네 덕분에 조금은 그림을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갖게 됐어. 이번에는 느낌적인 느낌으로도 네 작품에서 슬픔을 읽었어. 네 슬픔에 내 슬픔이 닿은 것 같아. 슬픔이 공명한 거지. 그건 거의 기적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