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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책방 Sep 24. 2021

자전거 is my soul


오늘 약속 장소는 모두 멀지 않으니,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 보기로 했다. 가을이 되어 날씨도 선선하니 좋았다. 불광천 옆을 신나게 달리다가 마포구청역 근처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이번엔 절대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허벅지에 힘을 주면서 올라갔다. 꼬불꼬불한 길을 한 번도 안 멈추고 올라갔는데, 문제는 오르막길을 올라간 뒤로 엉덩이 아래 두 허벅지가 나란히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다 길을 건너는데, 자전거 페달을 밟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 중간에 자전거를 세우고 쥐가 난 허벅지 부위를 두 손으로 문질렀다. 누군가 나를 봤다면, 얼마나 웃길까. 허벅지는 쥐나서 아프고 마스크에 숨이 막혀와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데도 내 자신이 웃겼다. 어릴 때 선생님한테 맞고 난 것처럼 두 손으로 허벅지를 힘차게 문지르다 보니, 조금씩 통증이 덜해지면서 정신이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도 자전거 타기를 멈출 순 없었다. 약속 장소에서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하면서 자전거를 탔고, 할 일을 마치니 저녁이 되어, 어두운 거리를 자전거 전조등을 밝히며 집으로 갔다. 문제는 집에 가는 길을 몰라, 카카오 지도를 보고 자전거 음성 안내를 들으며 가야 한다는 건데, 3주 전 누군가가 내 자전거를 넘어뜨려 핸드폰 거치대를 망가뜨려, 오로지 음성 안내에만 의지해서 가야 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음성 안내의 정확도가 너무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길을 가다 몇 번이고 멈춰 서서 핸드폰으로 현재 위치와 가야 할 방향을 확인해야 했다. 사천교 지날 때 길이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 될 대로 대라, 지구는 둥그니깐 자꾸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 집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아댔다. 사천교 아래에서 홍제천에서 불광천으로 달려, 결국 우리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했더니, 내가 입은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샤워하고 나서 조금은 살이 빠졌나 해서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오히려 200그램 쪄 있어서 놀라웠다. 그렇다고 근육량이 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 단련 시킨 내 허벅지 근육은 아직 측정이 안 되는 건가? 아님, 단련된 근육이 없는 건가?


내가 생각했던 그림은 긴 머리를 상큼하게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쿨하게 다니는 거였는데, 실상은 허벅지 근육에 쥐가 나고 땀에 쩔어 머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얼굴은 점점 꾀죄죄하게 변하고. 거기다 여름내 자전거를 탔더니,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가린 피부 외에 시꺼멓게 탔다. 특히 이마가! 자외선 차단 크림의 효과를 뚫고 이맛살만 까맣게 됐다.



조금 있으니, 남편이 땀 범벅이 되어 집에 들어왔다. 남편도 매일 퇴근할 때 자전거를 탄다. 이렇게 결혼 후 차곡차곡 찐 살을 자전거를 타며 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아직은... 좋은 소식이 없다.


자전거로 이동하니, 걸을 때와는 다른 자유로움이 있었다. 걸을 때는 생각하는 게 가능한데, 자전거 탈 때는 생각이 없어진다. 아무래도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많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바람. 자전거를 타면 바람이 내 곁에 생긴다. 바람과 함께 하는 느낌이 자유로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러나 차가 많고 거기에 사람까지 많은 곳에선 자전거가 짐처럼 느껴져 바닥에 던져버리고 가고 싶을 때도 잠시 있다.


이러나저러나 이제 내 자전거는 나에게 소중한 것이 되었다. 작고 가벼운 내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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