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의 춤 2
시간의 춤
발을 내딛는 자리에서
흙은 숨을 고르고
바람은 노래를 시작한다.
어린 날의 맨발은
풀잎의 속삭임을 품었고,
천천히 밟는 흙길에서
고요함의 무게를 알았다.
발목을 스치는 물결이
시간의 곁을 따라 흐르고,
모래 위 새겨진 흔적들은
언제가 잊힐 거라 두려워하던 날,
날카로운 돌멩이에
삶의 무늬를 새겨 넣었다.
어제의 흔적 위에 오늘의 길을 낸다.
갈림길에서는
오직 나만의 춤을 추며,
땅에 가장 가까운
몸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그 길을 선택한다.
지난주 토요일에 있었던 [조르바의 춤] 두 번째 시간은 주로 발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발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 도망가던 길에 예고 없이 움푹 파인 바닥에 발목이 꺾여 인대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리라.
침을 맞고 걸을 수 있게 된 나는 회복이 된 줄 알고 몇 년을 보냈고, 끊어진 발목 인대 대신에 다른 인대가 고생하면서 초울트라캡숑 커졌다. 마치 두 사람 일을 한 사람이 하다 보니, 마동석이 된 거였다. 인체의 신비.
끊어진 인대를 잘 정리해서 발목 한쪽 뼈에 쇠로 잘 고정해 박아놓고, 잘 당겨서 다른 뼈에 박아 넣었다. 인대는 고무줄 같은 거라 가능하다고 함. 인체의 신비.
통깁스에 반깁스, 깁스 대신 하는 보호대까지 해서 거의 7주 이상을 보냈다. 8월 초중반을. 재활 운동치료를 할 때마다 그 고무줄 같은 것을 늘리려고 노력했다. 내 양옆에서는 부상당한 운동선수들이 재활을 하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나도 운동선수처럼 재활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 병원이 운동선수 재활 전문이었던 건 나중에 알았다.
발로 길을 내는 작업, 발로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말 안 하고 지냈던 아버지와 커플 댄스를 추는 느낌이었다. 때로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화가 나기도 하고,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약한 통증이 느껴지기도 해서 짜증이 났다. 그러면서도 슬펐다. 가여운 내가 발에 묶여 있여 있는 것 같았다.
한여름에 바닷가를 맨발로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피부가 시꺼메져서 한 달 동안 탈피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네 살이었다. 내 피부가 벗겨지는 놀라운 경험이라, 기억난다. 시커멓게 변한 내가 신기했다. 내가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된 첫 기억이다. 손바닥이랑 발바닥만 하랬다. 꺄아아~ 웃기도 했다. 엄마는 신기하다고 벗겨지는 각질을 일부러 잡아당기지 말라고 경고했다.
어릴 때에는 몸이 작아서 그런가 발을 만지는 걸 서슴지 않았는데, 크면서 점차 발을 멀리하게 되었다. 발은 더러운 무언가가 되었다. 외로운 발은 뒤꿈치에 각질을 일으켜 기어코 매만지게 한다. 손아, 로숀으로 날 촉촉하게 하거라!
조르바의 춤은 자유를 위한 움직임이다.
나는 오늘 샤워를 하면서 조르바의 춤을 생각하고, 몸에 힘을 풀었다. 내 몸이 움직이고 싶은 대로 두니,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억지로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릴 때 시커멓게 변한 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