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의 점진적 소멸과정이 가져올 변화
존 그리셤의 소설 '의뢰인(client)'을 영화화한 동명의 작품 속에서 어린 남매는 외진 숲 속에서 어느 변호사의 자살시도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다. 남자는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자신의 차 안으로 연결시켜 질식사를 시도하려는 순간 12살에 불과한 주인공의 헌신적인 방해로 좌절되자면서 그 소년이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자동차 배기가스 흡입을 통한 자살방식은 1960년대 후반 선진국의 자동차 보유가 대중화되면서 덩달아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용?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 방법이 일산화탄소 중독 자살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1974년 배가스 촉매 변환기가 적용되기까지 이어졌다. 배가스 촉매 전환기는 불완전 연소된 가스를 촉매반응을 이용해 완전연소를 이끌어 내어 일산화탄소 농도가 1/4 수준으로 75% 감소시킬 수 있어 자살률 저하에 기여하였다. 즉, 기존의 배기가스는 몇 분 만 들이마셔도 치명적이었지만 촉매 변환기에 의해 10시간 동안을 호흡하여도 치명적이지 않게 되었다.
현대사회의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운송수단인 자동차는 사용연료 측면에서 목탄-석탄-경유(바이오오일 포함)-휘발유-천연가스-수소-전기로 변천되어 왔다. 전기를 제외한 이들 연료의 공통점은 C와 H의 혼합물로 구성되며, 순서대로 H/C 비율이 점차 높아지다가 결국 H(수소)로 귀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너지 밀도 측면에서는 오히려 낮아지는 경향이긴 하지만, 환경적인 측면이나 연소의 편의성 등의 장점 때문에 이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연료 구성성분 중 탄소의 지속적인 감소로 인해 얻는 장점으로는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적다는 것과, 불완전연소가 진행되면 엔진 배관을 막거나 2차적인 대기오염을 유발하는 비율이 낮아진다는 환경적 이유가 더해지면서 급기야 수소만을 사용하는 전기차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H/C비율은 상승은 엔진을 비롯한 연소 기계장치의 효율은 높이지만, 폭발적인 파워를 자랑하는 슈퍼카를 즐기거나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통을 장착한 관광용 기관차를 굳이 운행하는 비 생산적인 감성적 요소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순적인 행동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따금 교육과 강연을 통해 자주 제시하던 나의 단골 퀴즈 하나를 소개한다 ‘앞서가는 자동차 머플러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그 차의 연소는 정상적인가?’ 이 질문에 돌아오는 반응을 보면, 검은 배가스가 나오는 것은 연소불량이라고 여겨서 언뜻 쉽게 답이 나오지만 까닭 없이 물이 나오는 모습에 대해서는 다소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곤 한다. 자동차의 배가스는 사용되는 화석연료가 CnHm..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공기 중 산소와 반응해서 완전히 연소할 경우 최종 배출물은 이산화탄소(CO2)와 물(H2O)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자동차의 머플러에서 흘러나오는 간헐적으로 배출되는 물은 무색의 이산화탄소 가스인 것을 고려하면 이 자동차의 연소는 완전에 가까운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불완전 연소 시 일산화탄소(CO)와 고체상태의 미세한 검댕이(soot)가 발생되어 배출 가스가 시꺼멓게 변하고, 이 가스를 여과 없이 마시면 인체 내의 산소부족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오래전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들어왔던 연탄가스 중독사고와 같은 원리이다.
얼마 전 선거 유세차량에 장착된 추가 발전장치(아마도 경유 기반 소형 발전기)로 인해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자동차 배기가스에 관해서라면 앞서 언급된 촉매 전환기가 당연히 부착되었을 것이나, 간이식 발전기는 대부분 일시적으로 사용할 것을 전제로 하여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조만간 현재의 화석연료 기반 엔진 구동 자동차가 전기차 혹은 수소차로 대체되면 그나마 이 배가스에 의한 불의의 사고유형은 사라질 것이다. 수소나 전기는 구동 에너지를 생산하면서 단지 기체 상태의 물(H2O)이나 모터 작동에 따른 따뜻한 온기 정도만을 배출하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의 확산이 빠르다. 시승 기회를 얻어 최근에 출시된 전기차를 운전해 본 경험이 있다. 당황스러운 것은 화석연료 기반 자동차의 시동(始動) 음을 나타내는 의성어인 ‘부르릉’ 소리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냥 대시보드에 화면이 떠오르고 운행준비가 되었다는 소리만 들렸다. 오랜 세월 익숙한 화석연료 자동차의 시동음을 생뚱맞은 것으로 이해하는 세대가 조만간 나타날 것이다. 마치 전화 벨소리는 ‘따르릉’이라고 당연히 떠올리는 세대를 노인세대라고 인식하는 현재의 젊은이들처럼.
기술이 발전하면서 얻은 편의와 가치 뒤에 사라져 가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성을 표현하고 느껴왔던 '투박한 소음과 어설픈 모습'을 갈망하여 애써 여러 가지 대안을 새롭게 찾아야 할 세상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