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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라의 어른이 Apr 14. 2024

시니어로 살아가는 길, 주니어와의 경계구분

 직장에서 나의 근무한 세월은 마치 세상을 사람이 살아가는 나이로 환산하면 90대를 사는 것이 적절한 비유가 될까?  근년에 100세를 넘긴 원로 철학자가 자신의 장수생활을 설명하는 중에 ‘이렇게 오래 살다 보니 기억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없다는 것’이 불편하다는 그분의 설명은 직장에서 동년배의 동료들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과 내 처지와 거의 닮아 보였다. 일반적인 정년을 넘기고 어떤 때는 후배들의 퇴임을 아쉬워하고 문밖에 서서 손을 흔드는 시간을 보내면서,  오래 근무하면서 갖는 두려움 중 하나는 내 마지막 뒷모습이 후배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였다. 그래서 나의 시니어로서의 뒷모습이 어떠할 것이라는 질문 앞에 종종 마주한다.  나는 내게 주어진 과제를 시니어답게  정의하고 해결해 왔는가?  한 직장에서 후배들에게 보여준 새로운 가치가 고작 단순하게 오래 일 할 수 있는 가능성만을 보여주진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특히 연구개발분야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감사한 일이지만 동료나 후배 그리고 공동체에 어떤 가치를 주어야 했는지, 오래 버텨내는 것’이 보여준 다수의 후배들에게는 불편한 모습으로 비치진 않았을까? 반문으로 이어졌다. 그런 고민을 가지고 나를 곁눈질하며 바라보았을 수많은 이들에게 나는 온전한 시니어일까 하는 질문 앞에서 자신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 만났던 대다수의 선배들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대부분 자신의 뒷모습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심지어 몇 명의 후배와 동료 및 선배들은 예상치 못한 사고와 병으로 재직기간 중  짧은 인생을 마친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은 자신의 생의 정점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에 떠나기도 하였지만, 또 다른 경우는 미처 내재된 역량을 보이지 못하고 새로운 길로 나서곤 했다. 그중에는  선망의 대상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던 이가 예상치 않게 오랫동안 부정적 뒷모습을 남긴 선배와 동료들도 기억난다.  그런 긴 직장생활을 통해 내가 잠정적인 결론지은 것은  ‘같은 공간에서 공유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자신의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거나 혹은  유지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더욱이 평균이상 더 함께할수록 이 경향은 분명해진다'였다 자연적으로 퇴보하는 신체적, 정서적 상황을 딛고 타인이 공감할 만한 이미지의 유지 혹은 상승에 대한 기대는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다.  마치 2차 함수 곡선의 변곡점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처럼 정점(혹은 하점)을 찍고 변하는 상황은 오래된 공동체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래서 한 때 존경받고 의지 할 만한 존재였다면 변화하는 환경과 도전 앞에서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변함없이 확장하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고 자기 확신을 갖는 것은 스스로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동료연구원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여전히 내게는 신입연구원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도 이제는 10년 차에 이른 중견연구원이라고 내 착각을 교정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의 최근 고민 중 하나는 몇 년 전부터 신입연구원 채용이 증가하면서 그들의 활기차고 새로운 분석 tool(S/W)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과 자신의 예상보다는 빠르게 주어진 연구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과연 그들과 차별된 역량을 가진 시니어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와 비교하면 나는 거의 모든 연구원의 시니어? 인 터라 그간 나 역시 고민했던 부분을 같이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장기근무의 과실은 누렸지만 반대급부로 그 노쇄한 육신과 정신력을 통해 현재를 살아내면서 보여줄 가치가 여전한가를 늘 마음속에 새겨왔고,  육체노동은 아니지만 여전히 청년기의 강건함과 민첩한 일처리방식을 세월과 함께 흘려보낸 상태에서 과연 나는 어떤 가치를 갖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그에게 시니어와 주니어와의 차별적 요구역량은 단순한 기능성과 신속성이 아니라 더 넓고 통합적인 문제접근과 해결방안을 가지고 있는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대부분의 주니어는 역시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실제의 연구현장에서는 학교에서 학습해 온 일반적인 문제 해결방법을 가지고 실제의 문제 앞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는 여전히 미숙한 상태이다. 물론 개인의 역량에 따라 쉽게 이 가정을 무력화할 순 있지만 산업현장에서 당면한 특성적 연구는 일반적인 논리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나의 시니어에 대한 정의는 '문제 앞에서 다양한 관점과 그에 따른 경험적 지식을 포괄하는 능력을 보유한 존재'로 설명했다.  단선적으로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그 문제에 포함된 다양한 함의를 인식하고 그 상태를 관통하는 문제 재정의를 해 낼 수 있는 역량이 시니어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보완해서 시니어와 주니어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해 연상되는 다른 산업을 통해 비유해 보았다.  프로야구 선수단의 구성을 들여다보면 각 구단에는  지명타자라는 제도가 있다. 타격능력이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수비를 제외시켜 공격에만 전념토록 하는 제도이다. 물론 수비능력이 상대적으로 형편없거나 팀 내 수비위치에 더 유망한 선수가 있는 등 다양한 이유로 발탁되기도 하지만 득점능력은 반드시 우월한 기대 특성이라는 점은 공통적이다.  물론 프로야구의 개념을 다른 분야로 일반화시킬 순 없지만, 자칭, 타칭? 시니어인 나의 경우도 수비와 같은 기민 함 같은 팀워크활동에는 적합하진 않지만, 오로지 자신만의 차별적이고 궁극적으로 팀의 성과에 연결된 업무만 집중하기를 기대받는 위치로 인정되고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야마구찌 슈는  그의 책에서 설명한 대로 한 때 직급과 결정권을 가질 때의 ‘위치에너지확보‘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 운동에너지‘를 가지는 존재가 유능한 시니어라고 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는 시니어를 ‘시간적 깊이가 있는 직렬 사고를 지닌 사람’으로 정의하는데 그가  얘기하는 시간적 깊이는 오래 일한 결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을 염두에 둔 것이다.  동시에 자신이 경험하고 누적시켜 온 발효된 지식을 맥락을 가지고 정리해 온 존재로서 시니어를 정의하였다. 따라서 '자신만이 파악한 상황에  대한 스토리를 가지고 문제를 정의하는 행위가 시니어답다'는 그의 논리는 내 생각과 유사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시니어는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일에 대한 넓은 관점을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보유자라고 한다면 비록 육체적으로 기민하거나 빠른 학습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능히 주니어와는 차별적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공동체에서도 반드시 존재하는 시니어와 주니어와의 관계설정은 비단 연구분야뿐 아니라 정치, 정계, 교육, 산업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반드시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행동가치로서 필요한 가치이다. 우리 사회를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혼란 속에 처한 오늘의 지구촌은 어쩌면 존경받아야 하는 시니어에 대한 의구심과 아직 시니어가 될 자격이 없는 자신의 위치에너지만을 가지고 유사 시니어?로 열심을 다 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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