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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우 Dec 11. 2020

그럼에도 고양이는 사랑스럽다

아무튼, 그렇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눈으로 집사를 쳐다보는 녀석. 까매서 까미라 부른다. 좌측은 막내 '아메숏' 요미다


고양이는 사족보행 동물 중 특히 유별나다. 몸줄이라도 채우려 하면 올무에 걸린 듯 발버둥을 친다. 흡사 사냥꾼을 조우한 듯한 표정이 가관이다. 눈곱을 떼어주려 손을 뻗으면 장님 만들려는 줄 아는 것 같고, 발이라도 씻어주려니 얼음판에 댄 듯 소스라치게 놀라 당최 건들 수가 없다. 목욕재계라도 시도하는 날엔 하룻고양이에서 범이 된다. (브금: 이날치 '범 내려온다')


이 녀석들은 도통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언제든 '냥펀치'를 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이른바 임전태세다. 원하는 게 있을 때에만 주인... 아니, 집사를 따른다. 밥 달라, 간식 달라, 놀아달라, 화장실 치워달라... 오죽하면 첫째 고양이 이름은 '달라'로 바꿀까 고민했다. 무언가를 갈망할 때 고양이의 안광에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다. 매력보다는 마력이다. 안 해줄 수가 없다.


값비싼 장난감을 눈앞에 두고도 낡아빠진 종이 박스에 집착하는 게 또한 고양이다. 자동으로 굴러가는 로봇공보다 집사가 던져주는 종이 쪼가리에 더 환장하는 녀석들을 보면, 줄어버린 통장 잔고는 후회될지언정 마음만은 흡족하다. 물건의 값어치를 떠나 '집사가 자신을 위해 해주는 행위'에 더 기운을 쏟는, 어찌 보면 너무나 기특한 모습이 아닌가. 마루 한 켠 덩그러니 남겨져 버린 거대한 캣휠은 논외겠지만.


이것이 그 캣휠이다 (...)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스럽다. 특히 동물로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취침 시간에, 집사 근처에서 잠든 모습을 봤을 때라면 더 그렇다. 물론 쉽게 품에 파고들지는 않는다. 촉감을 느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살짝 기댈 뿐. 강아지가 '오직 주인님'을 외치는 열성 팬이라면, 고양이는 '있어는 드릴게' 속삭이는 츤데레다. 그 흔치 않은 의존이 집사들의 마음을 녹이고, 안달 나게 한다. 거참 희한하다.


먹이와 쉼터를 제공하는 인간을 보며 강아지가 "저분은 신이다" 생각할 때, 고양이는 "아, 내가 신이구나" 여긴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아주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진 않다. '집사'라는 호칭도 괜히 나온 건 아닐 테니까.


어떻게 보면 그들은 내게 매일,  가지 진리를 가르쳐준다. 받는 사랑 못지않게 주는 사랑도 가치 있음을. 그리고 깨닫게 한다. 이따금씩 보여주는 그들의 소소한 애정을 통해,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말이다.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아무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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