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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Nov 04. 2019

아이에게 욕을 했다

1년간 서랍 속에 넣어놓고 차마 발행하지 못했던 이야기


누가 그랬다. 아이가 18개월이 되면 너무 힘들어서 18 소리가 절로 나온다고.

내 아이가 14개월 하고도 2일 된 날, 욕은 머리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는 아기를 싸늘하게 모른 척했다.

나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자괴감이 절로 들었다. 넌 왜 나 같은 엄마를 둔 거니?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며칠 전부터 아이가 냉장고 안의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하고, 신기한 물건도 잔뜩 있고, 살얼음도 만져지니 얼마나 재밌었을까. 처음에는 못 만지게 제지하다가 뭐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들어있느냐고, 그냥 문 열어 놓고 실컷 만져보게 해 줘야 호기심도 충족될 거란 남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실컷 만지라고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아직 아기가 어려서인지 큰 반찬통은 건드리지 않았고 블록 놀이하듯 작은 반찬통을 꺼냈다 도로 넣었다가, 냉장고 벽면의 살얼음을 쓰다듬었다가, 문쪽에 꽂혀있는 물이며 음료, 양념통을 만지작 거리는 정도에 그쳤다. 문제는 위쪽에 꽂혀있는 날달걀이었다. 학생 기숙사의 작은 붙박이 냉장고라 달걀을 가장 위칸에 넣어도 아이의 손이 닿는 위치였다.

“이것만 빼고 다 만져도 돼.” 

라는 나의 말에 아이는 다른 무엇보다 ‘그걸’ 만지고파 안달하는 모습으로 화답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하면 오로지 코끼리만 생각하게 되는.. 내 탓이오. (출처: the-ultimate-you.com)


냉장고 문만 열었다 하면 날달걀을 만지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건드리지 못하게 하면 떼를 쓰고 우는 고집이 생기기 시작한 아이의 요구를 못 이기는 척 들어주기로 했다. 달걀을 하나 꺼내 씻어 큰 스테인리스 볼에 담아 줬다. 웬만하면 이 안에서 갖고 놀라고 신신당부하며 볼과 함께 건넸지만, 그럴 아이가 아니었다. 이내 달걀만 쏙 꺼내 거실 소파 있는 쪽으로 달아났다.

‘아.. 저기서 깨지면 골치 아파지는데..’

불안한 마음에 쫓아갔다. 기숙사 보증금에서 까일까 봐 바닥의 흠집과 벽의 낙서도 조심하던 나였다. 쫓아오는 나를 보고 아이는 모처럼 얻은 기회를 뺏길까 봐 조바심을 냈다. 뺏고 뺏기지 않으려는 실랑이 중에 아이가 달걀을 놓쳐 그만 깨져버렸다. 매트 대용으로 바닥에 펼쳐놓은 이불과 아기 텐트에 두 겹으로 겹쳐놓은 이불 사이. 결국 이불 세 개가 고스란히 날계란 세례를 받았다.


“야!!! 이거 어떡해!! 내가 이럴 줄 알았어 XX!!!”

욕은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왔다. (변명컨대 평소의 나는 절대 욕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계란이 깨질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아이도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게다가 엄마가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니 순간 얼어붙었다. 한번 열린 뚜껑은 쉽게 닫힐 줄 몰랐다. 아이에게 짜증을 내며 바닥과 이불을 적신 끈적끈적한 날달걀 잔해를 치웠다. 싸늘한 표정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집안 공기가 달라진 것에 놀란 아이는 당연히 식사를 거부했고 의자에서 빠져나오려고 온몸을 비틀었다. 저녁시간이 엉망이 됐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화를 낼 일이 아니었다. 분명 나는 아이가 달걀을 갖고 놀다 깨뜨릴 거라 알고 있었고, 스테인리스 볼을 주긴 했지만 얌전히 그 안에 깰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이불이나 소파, 벽에 던지지만 말고, 바닥에 깨뜨리면 다행이겠다, 하는 마음으로 줬다. 이불 세 개를 버리긴 했지만 그건 세탁비만 내면 세탁기가 알아서 해줄 문제니까. 계란도 깨질걸 알고 있었고, 이불 빨래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건만 나는 왜 그렇게 과민반응을 했을까. 

아마도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만든 사람이 아이도, 나도 아니라는 생각에, 그동안 차곡차곡 쌓인 감정이 폭발한 거였다.






그렇다. 난 해외에서 아이와 오롯이 둘이 지내는 진짜 독박육아 중이다.

남편을 비롯한 양가 부모님, 물리적으로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보육기관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스위스에서의 완전한 독.박. 꾹꾹 참아온 인내심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2018년 5월 초 친정엄마가 비자 기한 만료로 한국에 들어가신 후, 학기의 마지막 한 달을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며 보냈다. 남편은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고. 나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했다. 6월 초, 학기가 끝날 때까지는 육아와 살림, 기말고사와 과제, 내가 수업 가있는 시간 동안 아이를 봐줄 친구들과 시간을 조정하고, 낯선 사람이 초인종만 눌러도, 엄마가 주방에 서있기만 해도, 자기를 버리고 갈까 두려워하며 매달리는 아이를 달래느라 온 에너지를 집중해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테러당한 성적표는 덤)


6월 말, 여동생 결혼식 때문에 돌쟁이 아기를 데리고 혼자 한국에 들어가 3주간 머물렀다. 물론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24시간 밀착 육아를 하는 건 엄마인 내 몫이었다. 실은 동생 결혼식을 핑계 삼아 양가 어른들께 아기도 보여드리고 내 볼일도 보려는 은근한 목적도 있었는데, 결국은 마음 편히 아이를 맡기고 미용실에 갈 시간도, 산후 정기검진과 치과 진료를 받으러 갈 시간도 내질 못했다. 


그리고 7월 초에 스위스에 다시 돌아왔다. 남편은 일주일간 머무르다 한국 일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돌아갔다. 나는 방학 동안 국제기구와 하는 연구 프로젝트가 있었고, 한국에 다녀와서 바로 국제기구 담당자와 미팅, 팀 미팅 등이 줄줄이 잡혀 있었다. 팀 미팅은 어떻게든 양해를 구해 아기를 데리고 참석했지만, 국제기구 미팅, 교수님께 중간보고하는 미팅은 아기를 대동하기 어려운 자리였다. 학기 중에도 나는 육아와 학업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며 둘 다 원하는 만큼 해내질 못했는데, 방학 중에도 나는 육아와 프로젝트를 병행해야 하고, 회의 자리에도 아기를 데리고 가거나 아이 맡길 곳을 찾아 전전긍긍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2017년 9월, 내가 아기를 한국에 두고 첫 학기를 시작할 무렵 남편은 약속했다. 이듬해 5월까지 한국 일을 정리하고 합류하겠다고. 하지만 회사 프로젝트는 6월 말까지 지연됐고, 결국 5월에 합류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혼자 공부와 육아, 살림을 버거워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일단 스위스행 편도 비행기표를 끊었다. 7월 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을 정리하고 함께 하겠다고. 그러나 대한민국 사기업에서 육아휴직 처리는 내 맘대로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데드라인은 7월 말까지 딜레이 됐고, 나는 또다시 연장된 독박육아 기간을 어떻게든 버텨보려 바둥거렸다.


우리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남편도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렇게 화가 나고 그가 미운 이유는 뭘까. 아마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남편이 바라고 계획했던 바는 다 이루어졌다. 회사에서 맡았던 프로젝트도 안정적으로 마무리했고, 원하던 연봉 협상도 이끌어냈으며, 1년의 육아휴직 약속도 받아냈다. 


문제는 나였다. 공부를 시작하던 처음부터 육아 고민은 우리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였다. 힘든 상황은 5월이면 끝날 거라 생각해 겨우겨우 버텨왔는데 지연됐다. 7월 초면 독박육아에서도 해방되고 우리 세 식구가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는데 그것도 늦춰졌다. 7월 까지만 버티면 나도 내 연구 프로젝트며,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또 미뤄야 한다니!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거야? 아기는 나 혼자 낳았어? 왜 나만 희생해야 하는 거야!!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거냐고!!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남들은 그럭저럭 잘해나가는 것 같은데 나만 힘든 것 같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데 점점 상황은 꼬이고 악화되어가고,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과 이를 자처한 나에 대한 분노. 시어머니 말씀처럼 "공부는 저가 좋아하는 거고, 아기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며 몰아붙이는 사회가 비정상적이란 걸 알면서도 거기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애는 같이 낳았는데 육아는 왜 저만 해야 하는데요"라고 속시원히 쏘아붙이지도 못하는 무력한 나에 대한 분노. 그 화살이 남편에게 향했고, 아이에게로 터져 나왔다.  


출구가 없는 미로 끝에 다다른 듯 멘탈이 마구 무너져 내리던 오늘은, 새벽 2시인데 잠도 안 자고 울고 짜증 내는 아기의 목소리가 새어나갈까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창문을 꼭꼭 닫으며 아기의 입을 틀어 막아서라도 재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자식인데도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는 자체가 소름 돋았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오늘 밤은 내게 단 1%의 긍정도 낙관도 없다.



 



안녕하세요. 스위스 엄마 유학기 구독자 여러분. 내킬 때마다 띄엄띄엄 글 올리는 불량작가인데도 취소 안 하고 계속 구독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 


이 글은 작년 7월, 유학 두 번째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에 썼는데 너무 날것 그대로의 쌩분노가 담겨있어서 차마 공개하지 못하고 1년이 넘도록 작가의 서랍 안에 잠들어 있던 글이에요. 그때 사고 쳐서 엄마한테 처음으로 욕을 먹은 그 아이는 지금 30개월이 되었고, 아이에게 욕하고 충격받아 장문의 반성문을 쓴 그날 이후로는 다행히 아직 한 번도 욕을 한적은 없고, 아이에게도 삶은 달걀만 주고 있습니다..ㅋㅋㅋ  


82년생 김지영이 개봉하고 많은 여성, 엄마들이 공감하시는 걸 보고 용기 내어 글을 오픈했습니다. 저도 남편과 꼭 보러 가야지 (끌고 가서라도 보게 해야지) 다짐하면서도 주말에 아이를 맡기기 어려워 영화관에 못 가고 있네요. 하하하.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의 모든 걸 쏟아붓길 요구하는 자비 없는 아이와 내 맘대로 안 되는 육아에 분노 -> 자책과 미안함 -> 열 받아도 꾹 참기 사이클을 반복 중이신 엄마들의 어깨를 두드려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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