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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ul 08. 2019

아이의 두 돌 생일

공부하느라 돌사진도 못 찍어준 엄마는 영상을 찍는다



도니에게.


<구르미 그린 달빛>이라는 드라마가 대한민국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박보검이라는 잘생긴 청년이 삶의 팍팍함에 지쳐있던 누나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던 때였다. 6년 동안 등 뒤에 붙이고 다녔던 회사의 이름표를 떼어버리고, 학교라는 또 다른 사회에 소속된 지 넉 달 정도 되던 때였지. 전업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공부해보고 싶었던 분야를 탐구하던 재미에 빠져 유학이라는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던 때이기도 해. 

바로 그때 네가 찾아왔다. 푸른 하늘 뭉게구름처럼 하얗고 해맑은 널 상상하며 구르미란 태명을 지어줬어.



8월 말 즈음이었대, 생전 복권 한번 긁지 않던 외할아버지가 로또를 사야 하나 고민하던 때가. 황금돼지 두 마리가 가슴에 포옥 뛰어드는 꿈을 생생하게 꾸셨대 (쌍둥인 줄 알고 식겁). 준비되지 않은 우리에게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너였지만 온 가족이 기뻐하며 축복해줬단다.


널 기다리면서도 사실 난, 엄마가 된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배를 쓰다듬으며 졸업논문을 썼고, 영어학원을 다니고, 만삭으로 한 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에 가야 하는 상황임에도 3시간 넘게 앉아서 아이엘츠 시험도 쳤다 (결국 못 참고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오긴 했지만). 


노산이라 임신성 갑상선 기능 저하로 매일 약을 먹고, 임신성 당뇨로 혈당체크를 위해 손가락을 하루에도 몇 번씩 찌르며 식이조절을 하고, 몸살감기에 고열 통증 오한에 시달려도 혹시 네게 해가 갈까 약도 안 먹고 버텼지. 그렇게 내 몸을 살피고 관리한 건 처음이었어. 알잖아 엄만 다이어트 싫어하는 거...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빠와 난 허둥지둥 널 맞이했어. 만지기도 조심스러운 널 어설프게 안고 왜 자꾸 우는 걸까 궁금해했지. 먹이고 트림시키고 안고 재우고 놀고 기저귀 갈고 또 먹고.. 엄마는 잠 제대로 못 자고 퀭한 얼굴에 퉁퉁 부어있어도 네가 자는 모습이 너무 예뻐 하염없이 바라봤던 거 같아. 몸은 피곤했어도 너랑 같이 있을 수 있어 행복했어.


널 친정에 맡기고 혼자 출국했을 때, 매일 밤 눈물로 네 영상을 보다 잠든 시간들, 다시 만났을 때 낯선 이를 바라보듯 날 바라보던 너의 눈빛, 다시 너와 가까워지기 위해 했던 노력, 너와 단둘이 스위스에서 보냈던 날들이 생생해. 


정말 신기해. 같이 있을 때는 내가 해줘야 할 게 너무 많아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는데 막상 떨어져 있으면 눈앞에 네가 아른거리고 불안해져. 분명 넌 방에서 낮잠 자고 있는데도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괜히 들여다보곤 해. 우린 이제 네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어.



벌써 2년. 

한국에서보다 스위스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은 너. 너와 함께한 24개월이 아직 손에 잡힐 듯 선명해.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그리워할 수 있다는 걸,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죽도록 힘든데도 눈물 나도록 행복할 수 있다는, 이 말도 안 되는 모순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여전히 어설프고 너에 대해 잘 모르는 서툰 엄마와 아빠를 무조건 사랑해주는 너의 예쁜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영상을 찍고 기록한다. 


내 아기, 내 천사, 도니야 사랑해. 

엄마아빠와 함께 보내는 첫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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