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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환수 Apr 25. 2018

천안(서) 200 km 브레베

2018년 4월 21일, 천안 에이플러스 출발/도착

작년 5월에 참가했던 천안(남) 200 km 브레베에 이어 두 번째로 참가한 브레베였다. 원래 혼자 타려고 신청해 뒀는데 선배님 한 분께서 같이 타자고 신청을 하셔서 같이 탔다. 여러 모로 파란만장한 경험을 했던 브레베였다. 아마도 선배님 아니었으면 중간에 DNF 했을 거다.


지난번에는 천안으로 차를 몰고 갔는데, 끝나고 운전해서 올라오는 것도 은근히 피곤한 일이라 이번에는 전철을 타고 다녀오기로 했다. 편히 자려면 시외버스가 더 낫긴 한데 우리 동네는 버스 터미널이 없어서 버스를 타면 안양이나 안산으로 와서 다시 전철을 타거나 자전거를 타야 한다.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번거롭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 전날 남았던 볶음밥을 먹고는 의왕역까지 자전거로 움직였다. 의왕역에서 전철을 타면서 브레베 가시는 분들 좀 계시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자전거 가지고 탄 사람은 나 뿐이었다. 에이플러스 샵에 가서 부랴부랴 신체포기각서 쓰고 브레베 카드 받고 검차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7시 반에 출발했다.  


출발하고 채 300미터 정도밖에 안 돼서 서부대로 좌회전하는 신호를 기다렸다가 출발하려는 순간,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클빠링을 했다. 나는 오른쪽 클릿을 먼저 끼운 상태에서 출발을 하는데 이상하게 출발 직전에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넘어가면서 자빠졌다. 클빠링은 항상 어이가 없고 쪽팔리고 억울하고 후회되지만 이번에는 더욱 더 심했다. 다행히 장비도 괜찮고 무릎 좀 까진 거 빼면 부상도 별로 없어서  다시 출발했다. 처음 보이는 펀의점에서 소독약하고 밴드 사서 처치를 하려고 했는데 천안아산역 조금 지나서야 진행방향 반대편에 편의점이 보였다. 그나마도 소독약은 없고 밴드만... ㅠㅠ 많이 아프진 않았지만 피가 은근히 많이 나서 신발에도 떨어져 있었다.  일단은 밴드하고 물티슈로 대충 처치를 하고는 다시 달리다가 금방 좀 큰 편의점 가서 과산화수소수를 사서 다시 소독하고 밴드 갈고 다시 이동했다.


그러고 면천로를 가고 있는데, 날카로운 자갈 깔린 데를 지나고 나니 앞바퀴에서 푸슈슛 소리가 난다. 이렇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는 펑크는 처음 겪어 본다. 튜브 갈고 펌프로 바람 좀 넣고 CO2로 마저 채운 다음 CO2 주입기를 빼는데, 어이 없이 밸브코어가 주입기에 딸려서 빠져나왔다. 이것도 처음 겪는 상황. CO2 주입기에서 힘겹게 밸브코어를 빼서 튜브에 대충 손으로 끼우고는 미니펌프로 100 정도만 채우고 다시 달려야 했다.


시작하자마자 경험한 클빠링이 은근 정신적 대미지가 컸는지 출발할 때와 멈출 때마다 긴장됐다. 평소보다 컨디션도 엄청 안 좋고, 한 80 타면 아팠던 것도 없어지고 무념무상으로 타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그게 안 되고 점점 더 힘들어지고 느려지기만 했다. 같이 탄 선배님께서 계속 챙겨주시지 않았으면 아마 중간에 포기했을 거다. 첫 번째 CP에서 혹시 이부프로펜 진통소염제 없나 찾아보니 부루펜 시럽 밖에 없단다. 어쩔 수 없이 병에 담긴 부루펜을 사서는 거의 세 시간마다 20 mL 씩 먹으면서 말 그대로 약발로 달렸다. 이부프로펜은 최고다. 코어 근육이 약해서 오르막 좀 오르면 허리가 많이 아픈데, 이부프로펜 덕에 허리 통증이 확 줄어들어서 훈련되지 않은 몸으로도 어느 정도 달릴 수 있었다.


181 킬로미터 지점인 마지막 고개 정상에 겨우겨우 도착해서 잠시 쉬는데 확인해 보니 남은 거리가 28 킬로미터다. 남은 시간은 단 70분. 아, 잘 뚫린 평지 자전거길을 밝은 시간에 달려도 만만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 신호등도 가끔씩 나오고, 내리막도 있지만 오르막도 조금은 남아있는데... 게다가 시골길이라 가로등이 없는 구간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도 많고 처음 가 보는 길이라는 결정적인 문제까지 남아 있었다.


잽싸게 큐시트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외웠다. 가민이 있긴 했지만 가민이 알려주지 않는 턴이 은근히 많아서 가민만 보고 가다가는 길 찾느라 늦을 게 뻔했다.


그렇게 가로등도 거의 없는 초행길을 밤에 시원찮은 라이트 하나에 의지해서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깜깜한 국도를 지나 배방읍을 지나 공사구간이 군데군데 있고 가로등 하나도 없는 하천변 농로(?)를 지나 천안시내로 들어섰다. 서부대로에 진입했는데 한 5 km 남은 상황에서 시간은 15분쯤 남아 있었다. 아, 신호도 많고 은근 언덕도 있는데...


진짜 있는 힘을 다 해서 미친 듯이 달렸다. 그렇게 에이플러스 샵에 도착하니 컷오프 1분 전이었다. 그 어렵다는 13시간 29분 완주를 해 내고 말았다. 진짜 신호 한 번만 더 걸렸으면 DNQ 할 뻔 했다.



오늘 천안 브레베는 유난히 참가자 수가 적었지만, 란도너들이 지나가면서 만나면 서로 응원해 주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 아, 그리고 우리가 1분 남기고 완주에 성공하면서 오늘 천안200 브레베는 참가자 전원이 완주했다고 한다.


코스는 아주 좋다. 우선 다른 브레베에 비해 높은 언덕이 없어서 오르막에 엄청나게 약한 나에게는 아주 좋았고, 변산반도, 예당저수지 등 경관이 아주 좋은 길이 많다. 차 많이 다니는 공도가 좀 후달리기도 하지만 차량 통행이 적은 시골 국도는 자전거로 달리기에 아주 좋다. 다음에도 한 번 더 달리고 싶은 코스다.


집에 올 때도 전철을 타고 왔는데, 집에 도착해서 옷을 벗으며 보니 땀냄새가 풀풀... 주변 승객들께 큰 폐를 끼친 것  같다. 그렇다고 어디서 씻을 만한 여건도 안 되고... ㅠㅠ


P.S. 1분 차이로 완주하는 거 진짜 스릴 넘치고 뿌듯하다. 일상이 무료하신 분들께 강추한다. ㅋㅋㅋ


P.P.S. 예당저수지 지나갈 때 랜도너로 추정되는 분들이 반대방향으로 가고 계셨는데 뭘 두고 와서 되돌아가시나 했다. 나중에 에이플러스 샵에 가니 서울 400 하시는 분들 못 봤냐고 물으시더라. 그제야 알았다. 미리 알았으면 응원해 드렸을 텐데 많이 아쉽다.


P.P.P.S. 오늘 나를 살린 아이템들: 자전거용 안장 가방 (오타고 안장 가방을 얼마 전에 사서 처음으로 달고 갔는데, 여기에 터진 튜브도 대충 말아 집어넣고 밴드나 소독약도 적당히 쑤셔넣고, 부루펜도 넣을 수 있어서 정말 잘 써 먹었다.), 부루펜 (아플 땐 역시 이부프로펜이다. 다음에 장거리를 갈 때는 꼭 알약을 미리 챙겨가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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