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의 물리학
자전거를 타다 보면 오르막길을 오를 일이 자주 생긴다. 평지에서도 속도 차이가 많이 나지만, 평지에서 비슷한 속도로 탈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오르막 속도 차이가 크게 나는 걸 흔히 본다. 평지에서 더 잘 타는 사람이 오르막에서는 한참 뒤처지는 일도 적지 않다. 거리로는 작은 부분에 불과한 오르막 기록이 전체 기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동호인들 사이에서도 자전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오르막 오르는 실력을 기르고 싶어 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웬만한 로드 자전거 동호인 사이에서는 오르막을 오르는 능력이 실력의 중요한 척도 가운데 하나다. 로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남산 북악 기록이 몇 분대라고 자랑한다든가 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는 체중이 많이 나가고, 체중에 비해 근력이 약해서 오르막을 잘 못 오른다. 평지에서는 그럭저럭 빠르게 움직이지만 오르막을 만나면 한없이 약해진다. 내 기준으로는 1-2% 경사까지는 크게 힘들지 않지만 경사가 3%가 되면 조금 힘들어지고, 경사가 5%만 돼도 아주 낮은 기어로 옮겨야 한다. 경사가 한 7%를 넘어가면 가장 낮은 기어로 변속하고 7-8 km/h 정도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경사가 10% 정도 넘어가면 지그재그로 올라가거나 그냥 자전거에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 이나마도 많이 나아진 거다. 예전에는 7% 경사만 돼도 조금 힘들다 싶으면 가차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야 했다.
도로나 지형의 기울어진 정도는 보통 경사, 경사도로 표시한다. 경사도는 어떤 사면이 있을 때 상승고도를 수평방향 진행 거리로 나눈 값을 백분율 단위로 표시한 값이다. 예를 들어 어떤 경사면이 수평방향 진행 거리가 100m일 때 수직 상승고도가 10m라면 경사도는 (10/100) * 100 = 10%이다. 어떤 경사면이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면 수평 진행 거리와 수직 상승고도가 같기 때문에 경사도는 100%가 된다. 바꿔 생각하면, 경사도는 주어진 경사 각도에 대한 탄젠트 값을 % 단위로 표기한 것이다. 45도의 탄젠트는 1이고, 1을 퍼센트로 표시하면 100%가 된다.
얼마 전, 언덕길을 낑낑대며 올라가다가 경사도와 속도별로 필요한 일률(파워)이 궁금해졌다. 그걸 여기서 계산해 보자. 평지를 등속으로 이동할 때도 지면과 자전거 사이, 구동계의 저항과 공기에 의한 마찰 같은 여러 요인 때문에 필요한 일률이 0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계산하는 것은 “같은 조건에서 평지를 달리는 경우에 비해 추가로 필요한 일률”이다.
과학 시간에 배우듯이 일(work)은 가해준 힘에 이동거리를 곱한 값이다. 힘을 F, 이동거리를 s라고 하면 일 W는 W = Fs로 구할 수 있다. 일률(power)은 단위 시간당 한 일이므로 P = W/t = (Fs)/t = F(s/t) = Fv로 구할 수 있다. v는 단위 시간당 이동한 거리, 즉 속력으로, 이동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따라서 오르막을 오르기 위해 추가로 필요한 일률은 자전거와 탑승자 전체를 지구가 당기는 힘에 수직방향 상승 속도를 곱한 값이다. 오르막의 경사 각도를 A라고 한다면 수직 상승 속도는 v sinA로 구할 수 있다. 이제 자전거 총질량을 M이라고 하고 지구의 중력가속도를 g라고 하면 오르막을 오르기 위한 일률은 P = Mgv sin(A)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된다.
체중 80 kg인 사람이 총 질량 10 kg인 자전거를 타고 경사도 5%(2.86도)인 언덕을 10 km/h (2.78 m/s)로 이동한다고 하면 P = 90 * 9.8 * 2.78 * sin(2.86도) = 122W라는 결과가 나온다. 필요한 총일률은 여기에 같은 조건의 평지를 시속 10 km/h로 달릴 때 필요한 일률을 더하면 될 것이다. 경사도가 10%면 244W, 15%면 364W가 추가로 필요하다.
근데 매번 이런 식 써 놓고 계산하면 불편하니까 조금 간단한 공식을 만들어 보자.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아마 배웠을 텐데, sin(x)/x나 tan(x)/x는 x가 0으로 갈 때 극한값이 1이다. sin(x)/tan(x)도 x가 0으로 갈 때 극한값이 1이다. 이는 sin(x)나 tan(x)나 x나 x가 작은 영역에서는 대충 비슷하다는 뜻이다. 그럼 얼마나 작을 때 그 값들이 충분히 비슷할까? 뭔가 “극한”이라고 하니까 0.0001보다 작은 그런 숫자가 되어야만 비슷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그 값이 아주 크다. 예를 들어 자전거로 오르기에는 꽤 무리라고 할 수 있는 20%의 경사도를 생각해 보자. 20%는 각도 단위로는 11.31도이다. 이 정도면 각도가 커서 사인과 탄젠트가 크게 차이 날 것 같은데, x=11.31도=0.1974라디안일 때 sin(x)와 tan(x) 값은 2%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범위에서는 같다고 놔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앞에서 경사도는 해당 경사 각도의 탄젠트 값을 %로 표기한 것이라고 했다. 어떤 경사각도 A에 대해서 그 경사도가 tan(A)인데, 이 값은 sin(A)하고 거의 같다. 어? 앞에서 필요한 추가 일률을 구할 때 sin(A)를 썼는데, 그걸 그냥 tan(A)로 써도 별 차이 안 나고 그럼 sin(A) 자리에 A에 해당하는 경사도를 쓰면 되네? 맞다. 즉 P = Mgv*(경사도)이다. g는 9.8인데 이것도 숫자 10 하고 2% 밖에 차이 안 나니까 편의상 10으로 써 버리자. 이렇게 하면 P = 10*(경사도)*M*v로 계산할 수 있다. 이 식으로 다시 아까 계산한, “체중 80 kg인 사람이 총 질량 10 kg인 자전거를 타고 경사도 5%(0.05)인 언덕을 10 km/h (2.78 m/s)로 이동”하는 걸 다시 계산해 보면 P = 10*0.05*90*2.78=125W이다. 훨씬 간단한 식으로 수 % 차이로 정확한 값을 계산할 수 있다.
조금 더 식을 다듬어 보자 m/s 단위는 조금 생소하니까 km/h 숫자를 바로 넣어서 계산하기 쉽게 하자면 속력이 X km/h, 경사도가 Y%, 자전거+사람이 M kg이라고 할 때 P = 9.8*0.01*Y*M*0.278*X = 0.0272 * XYM이라고 쓸 수 있다. 그냥 km/h 단위 시속에 퍼센트 단위 경사도, 자전거와 사람을 합친 무게를 다 곱하고 거기에 0.0272를 곱하면 된다. 쉽지 않은가? 아, 안 쉽나? 안 쉬우면 어쩔 수 없고. 이 식을 이용해서 몇 가지 총중량(자전거+사람), 경사도, 속도에 대한 추가 일률을 계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와트 단위로 써 놓으니 아마 잘 감이 안 올 텐데, 자전거 즐겨 타는 동호인이 20분짜리 기능적 역치 일률(FTP; Functional Threshold Power)을 측정했을 때 250W 정도 나오면 아주 잘 나오는 거다. (헬스장에서 와트 단위로 일률(POWER) 표시되는 자전거를 타 봤다면 아마 250W로 꾸준히 오랜 시간 페달을 밟는 게 상당히 힘들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고급자덕이나 실업팀 선수들 파워미터 측정값 보면 300-350W 정도를 꾸준히 내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투르 드 프랑스 같은 데 나가는 투어 프로들은 400W를 넘어가기도 한다. 물론 체중 따라 차이가 크기 때문에 실제로는 일률을 체중으로 나눈 값으로 비교를 많이 한다. (W/kg 단위로 따질 때 열심히 탄다 하는 동호인이 2-3, 그중에서 아주 잘 타는 사람들이 3.xx, MCT 같은 데서 잘 타는 정도면 4.xx, 실업팀이나 우리나라 로드 국가대표 정도면 5.xx, 투르 드 프랑스 같은 데 나가는 투어 프로 정도면 6.xx 나온다고 보면 되는 것 같다.)) 저렇게 FTP 테스트를 하고 나면 보통 토하거나 바닥에 널브러져 한동안 꼼짝도 하기 힘들다. 예를 들자면 체중 70 kg인 사람이 10 kg 정도 되는 자전거를 타고 평지를 시속 10km/h로 갈 때 32W가 든다면, 거의 같은 조건에서 경사도 10%짜리 언덕을 시속 10 km/h로 올라가면 250W의 일률로 죽을 둥 살 둥 올라가면 된다는 얘기다.
저 수치를 보니 더더욱 화천 DMZ의 두 언덕을 오르는 게 까마득하게 여겨진다. (해산령이 7.3 km에 평균 경사도 6%, 한묵령이 3.4 km에 평균 경사 7%이다)
어쨌든, 오늘의 결론은 0.0272에 총중량, 경사도, 속력을 쭉 곱하면 언덕을 오르기 위해 추가로 필요한 일률이 나온다는 거다. 언덕을 오르다가 힘이 들면 내가 평지 대비 이 정도 일률을 꾸준히 추가로 내야만 이 언덕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오를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 되겠다. 이제 돈 벌어 파워미터 사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