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별 책방이 하는 생일책 콘셉트는 일본 '마루노우치 리딩 스타일'이라는 대형 서점에서 한 코너로 '생일문고'를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작가의 생일을 선물하는 이 생일문고는 우리나라에도 2015년 즈음부터 꾸준히 소개되어 왔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방 관련 책에서도 자주 소개되었기에, 책방을 준비하던 분들은 더욱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국내에는 2018년까지 생일문고와 같은 기획이 없었다. 이유는 작가 생일을 모아 보면 알 수 있다. 구글에서 작가들의 생일을 바로바로 알 수 있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생년월일까지 자세히 소개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처음 생일책을 준비하며 인터넷을 샅샅이 훑었을 때가 기억난다. 어린이 동화책이나 만화책 등 도저히 블라인드 북으로 못 팔 것 같은 책들을 빼고 나니, 외국 작가를 포함해도 366일 중 200여 일의 생일만 수집할 수 있었다.
이래서 한국에 이 기획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든 생각은 '그렇다면 가장 먼저 시작하면 독보적인 서점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꿈꾸는 별 책방이 오픈하던 2018년, 한국에는 생일책 컨셉을 소개하는 서점만 네 군데가 생겼다. 꿈꾸는 별 책방과 구미의 삼일문고, 그리고 연남동에는 밤의서점과 서점 리스본 두 군데나. 서점 오픈 일 년 뒤 홍대 경의선책거리에 입점한 이유는 '나도 있어요!'라는 걸 알리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2018년에 생겼다고 뭉뚱그려 말하는 이유는 역시 생일책 컨셉을 한 책방 중 꿈꾸는 별 책방이 가장 늦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그 변명이다.
첫 번째 고민은 생일문고 기획에 대한 한국식 이름이었다. 마루노우치 리딩 스타일의 생일문고는 날짜뿐만이 아니라 작가의 이름과 출생연도까지 나와 있었다. 문고본이 많은 일본이기에 '문고'라는 이름을 써도 그곳에서는 잘 어울렸다. 우리나라 정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책이라는 아주 간단한 단어가 있었지만, 이 단어를 가지고도 한참 고민했다. 직관적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 책들을 고객이 기념일이나 책방에 방문한 날에 사고 싶을 때 '생일'이라는 테마에 갇히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결국 책방을 열고 나서는 생일문고와 생일책을 병행해서 썼고 지금은 생일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이름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민중이다. 아는 분이 반 장난으로 텀블벅에 올린 작명소에도 의뢰를 하고 개인적으로도 다른 이름들을 고르고 있으니 언젠가는 생일책 대신 다른 이름으로 이 책들을 소개하지 않을까 싶지만 게으른 사람이 하는 서점이니 언제가 될진 모르겠다.
두 번째 고민은 독창성이었다. 마루노우치 생일문고는 작가의 이름을 모두 공개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같은 컨셉으로 하면 후발주자들이 넘쳐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물론 2018년에 위와 같은 상황이 되었고, 본원인 마루노우치 리딩 스타일은 생일문고 기획을 접었기에 의미 없는 고민이 되었지만.) 열심히 모은 생일 데이터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우리 책방에 특별히 생일 정보를 준 작가들에게도 실례가 된다고 생각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책 소개글'이었다. 책마다 날짜는 공개하되 저자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고, 대신 한 날짜에도 여러 책을 준비하고 각각의 책을 고객이 선택할 수 있도록 추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책 표지 앞부분에는 책 속의 문장을 넣고, 뒷부분에는 책과 관련된 힌트를 해시태그 형태로 준비했다.
수백 권의 책에 이 작업을 하는 과정은 굉장히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결국 내가 책을 조금씩이라도 읽고 한 번 더 만져 봐야만 할 수 있는 작업이니까. 하지만 책방 오픈 전 이 과정을 준비하며 나는 오히려 확신을 쌓아갈 수 있었다. 뒤늦게 시작하는 그 누구도 이 작업을 따라할 순 없다고.
꿈꾸는 별 책방의 생일책은 이제 1,200여 권이다. 그리고 준비된 모든 책들은 각각의 소개하는 문장과 키워드를 담고 있다.
세 번째 고민은 생일책 큐레이션의 양적 질적인 경쟁력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작가들의 생일 정보는 한계가 있었고, 억지로 생일책을 선보이려면 어린이 동화책이나 위인전, 평전 등으로 남은 날짜를 채워야 했다. 하지만 그런 책을 받아든 분들이 다시 우리 책방에 올까? 커다란 기업이라는 재방문율이라는 수치를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신생 서점에는 실망해도 돌아간 독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오늘 하루 책방에 오는 손님들께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준비되지 않은 날짜가 가득한 상태로 생일책을 선보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정공법을 선택했다. 좋아하는 책을 발견할 때마다 작가들에게 메일을 보낸 것이다.
한국 작가들에게는 그때그때 책방을 소개하는 글과 이 책을 생일책 리스트에 넣고 싶다는 의사를 담아 메일을 보냈고, 때로는 출판사를 통해 작가의 생일을 수집했다. 외국 작가들의 경우 구글 번역기를 활용해 영어로 연락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답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높은 비율로 돌아왔고, 많은 작가분들이 자신의 책이 우리 책방에 생일책으로 누군가에게 선물된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멀리서부터 독자들에게 함께 전달할 엽서나 선물을 보내 오는 분들도 있었고, 직접 방문해 굿즈를 전달하고 즉석에서 사인본을 만드시는 분들도 있었다.
꾸준한 연락과 수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꿈꾸는 별 책방을 먼저 알고 생일 제보를 먼저 해 오는 작가분들도 생겼다. 콜센터에서 자주 보는 용어인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렇게 꿈꾸는 별 책방은 다른 곳에서 만나지 못했을 좋은 책들을 꾸준히 모아 가는 서점이 되어 가고 있다.
사실 생일책 컨셉만으로 서점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땐 이 데이터가 완성되기까지 최소 3년에서 5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데이터는 모아 놓고 책 속의 문장과 키워드를 입힐 여력이 없어 일단 구입해서 진열해 둔 책만 해도 책장 한가득이다. 독자들이 먼저 읽고 문장과 키워드를 고를 수 있도록, 독자들의 참여로 완성되는 생일책이 되기 위해 따로 공간을 만들 예정이다. (우리 책방에서 '예정'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도 붙여 두지만, 그래도 다른 '예정'들보다는 우선순위다) 아마 5년 뒤에는 내 기대대로 '책방에 방문한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구입해도 인생책이 되는 서점이 되어 있지 않을까?
날짜마다 소설과 에세이, 실용서가 골고루 들어있는 날도 있는 반면, 소설만 한가득이거나 실용서만 한가득인 날도 있다. 그리고 아직 단 한 권의 책만 기다리는 날도 있다. 꿈꾸는 별 책방은 '평소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책을 만나게 해주는 장소'가 되길 바라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원하는 날짜의 책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독자에게는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는 장르를 고르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래서 속상한 마음을 억누르며 책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손님들을 보면 미안해진다.
그럴 땐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책만 있는 것 같아 죄송하다고, 연락처를 남겨 주실 수 있다면, 앞으로 좋은 작가를 만나고 그 날짜에 다른 책이 채워지면 꼭 연락을 드리겠다고. 확답을 드릴 순 없지만, 내년에 다시 오시면 다른 좋은 책을 더 준비해 두겠다고.
좋은 책을 구하기 위해 내가 해 온 일들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솔직할 수 있다. 오늘 오신 손님에게 한 약속이 언제 지켜질지는 사실 모른다. 특정 날짜를 정해 두고 작가한테 연락할 수는 없고, '이 날짜가 비었으니 작가님은 이 날이 생일인 겁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까. 나도 알고 손님도 알지만, 이 이야기들을 통해 오늘 오신 손님은 '다신 오지 않을 곳'에서 '한번 지켜볼 곳'으로 꿈꾸는 별 책방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내년에 다시 와 주세요'라고 말할 준비를 하고 책방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