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읽을마음 Feb 25. 2021

한번만 기회를 더 주신다면

책방에서 빈 손으로 나가도 미안해하지 않기

책방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책방의 이야기에 눈과 손이 간다. 다른 책방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교훈도 얻고 공감도 느끼면서 어쩐지 그 책방의 책방지기와도 더 친해지는 기분이 든다. 책방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도 책방이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 주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책방에서도 힘든 순간들이 생기나보다. 사실 책방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다른 업종에 비해 굉장히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은 분들이다. 통계는 낼 수 없지만, 대하기 어려운 손님을 만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혹시 손님이 나를 대하기 어려운건가 돌아볼 필요도 있겠지만.


좋은 손님을 만나기 위해, 꿈꾸는 별 책방은 몇몇 장치들을 마련해 놓았다. 1층이라서 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문턱이 있다. 처음 이 구도를 의뢰한 목공방에서는 핀잔을 들었다. 문턱을 그렇게 높게 만들면 1층일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손님들이 이 한 계단을 올라오면서 '내가 책방으로 들어간다'는 마음을 먹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열려 있으니까 스르르 들어오기보다는, 책방에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아주 작은 각오를 하는 것이다. 그 각오를 마친 분들만 책방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 책방의 방문객 대비 책 구매비율은 50퍼센트 정도 된다. 방문객을 모두 기록하지는 않아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때로 책방들의 이야기를 찾다 보면 책방을 구경하고 돌아서는 분들에 대해 한숨이 나온다는 소감을 남기는 책방지기들이 있다. 심정에는 이해가 가지만, 책방지기의 멘탈이나 손님들을 위해서나 바른 방식의 반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공들여 만든 공간을 향유하고 그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것에 원망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손님은 눈치 보지 않고 누릴 수 있는 더 큰 서점을 갈 수도 있었다.


50퍼센트. 이 구매비율을 놓고 나는 먼저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나머지 50퍼센트의 손님에 대한 내 마음은 다음과 같다.


'다음에는 꼭 마음에 드는 책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책방을 좋아해주시고 시간을 들여 찾아 주셨는데 그냥 나가는 마음이 오죽할까.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미안한 기색을 비치며 그냥 나가는 손님들이 너무나 고맙고 또 미안해졌다. 그리고 더 좋은 책들을 준비할테니 다음번에 꼭 다시 들르시길, 그리고 내가 책을 팔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반갑게 인사한다.


책방을 열고 반 년 정도 지났을 때 먹은 이 마음은 지금도 책방을 이어 가는 데에 큰 힘을 준다. 오히려 긴 시간을 책방에 머무는 손님일수록 '세상에, 이 책방이 그렇게 마음에 드신다고?'라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가 그냥 나가시는 분이 있더라도 '다음번에 다시 오실 수밖에 없겠군!'이라는 기대도 갖는다. 그리고 속으로 한 번 더 다짐을 한다.


'다음엔 그냥 못 나가실걸요?'


행여나 나가시는 손님께 속마음이 부담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리고 따뜻하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년에 다시 와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