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친정집에 다녀왔다. 친정은 수원에 있는 아파트이다. 두말할 것 없이 아파트는 쾌적했다. 도시가스이기 때문에 난방비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들이 그새 춘천의 추위에 적응을 해버린 건지 10월의 친정집은 너무 덥다며 땀까지 흘렸다. 첫째는 잠옷을 벗어던지고 반팔로 갈아입었다. 아파트니까 갑자기 튀어나올 벌레 걱정 없이 세탁실도 맘 편히 들락날락 할 수가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이곳에선 단 하나의 규칙을 지켜야 했다. 아이들은 절대로 뛰어서는 안 되었다. 집에서 마음껏 뛰며 생활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살금살금 걷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뛰는 게 보이면 제지시켜야만 했다. “어! 뛰면 안 돼.! " "얘들아 여기선, 뛰면 안 돼!" 첫째는 초등학생이라 말을 알아듣고 조심할 수 있었지만 제약 없이 뛰어놀던 둘째는 왜 뛰면 안 되는지 엄마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늦은 밤에도 쿵쿵쿵 소리를 내었다. 진땀을 흘리며 서둘러 아이들을 재웠다.
며칠간 친정에 머물면서 층간소음 유발 노이로제는 계속되었다. 아이를 뛰지 않게 하기 위해 안고 옮기거나, 이불을 깔아주거나 하느라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했다.
결국 친정 4일 차 인터폰이 울렸다. 경비실에서 층간소음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는 뛰지 말라고 쫓아가면 같이 노는 줄 알고 더 멀리 빠르게 달려 도망갔다. 빨리 재우려 했지만 더 잠을 안 자는 아이.. 초조한 마음.. 그렇게 층간소음 가해자가 되어 아이 발소리에 대한 공포의 시간을 보냈다.
친정에 머무는 동안 조금씩 흙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화분에서도 식물을 기르는 것이 가능한 일이지만 텃밭을 꾸려봐서 그런지 뭔가 땅의 기운을 듬뿍 받기에는 모자란 느낌이었다. 집 주변에서도 길은 잘 포장되어 있고 산책로도 있었지만 흙을 밟을 수 있는 땅이 많이 없어 보였다. 흙이 주는 땅의 기운을 받기에는 주택 쪽이 훨씬 좋을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당이 없는 아파트가 조금씩 갑갑해지고 집이 그리워지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춘천집에 오자마자 특유의 차갑고 상쾌한 공기가 느껴졌다. 산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을이 묻어나고 있었다. 아이들과 집에 들어오니 마음이 놓인다. 이제 마음껏 뛰어 돌아다니던지 소파에서 뛰어내려도 상관이 없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그날 밤에는 달콤함도 잠시 화장실에서 새끼지네를 만났다. 내 눈으로 보는 두 번째 새끼지네.. 지네를 만날 때엔 마음에 지진이 일어나며. 잠시나마 다시 아파트 생각이 치솟게 했다. 각자 하나의 장점과 하나의 단점을 가지고 있는 주거 환경 사이에서 이렇게 마음이 많이 오고 간다.
날이 서늘해지면서 난방텐트를 설치했다. 난방텐트 안은 따뜻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오면 내려앉은 아침공기가 제법 차갑다. 냄비에 물을 받아 끓이며 거실의 공기를 데운다. 때마침 산자락 위로 해가 뜬다. 거실창가에 앉아 온몸으로 햇볕을 쬔다. 역시 지구의 최고의 난방시설은 태양이다. 추운 밤이 지나고 마주하는 햇살은 더없이 따스하다. 뒤늦게 일어난 아이들과 모여 앉아 볕을 가득 쬐었다. 이렇게 다시 햇빛을 마주하는 아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