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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레 Jun 07. 2022

녹음의 여름


비가 온다.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하루 종일 해가 뜨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노란 태양이 하늘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대지가 밝은 빛으로 바뀌고 파란 하늘엔 몽글몽글한 구름이 드리운다. 웅크리고 있던 벌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자연은 늘 태양과 함께한다. 태양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전원생활을 하면서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추운 북쪽 지역일수록 태양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태양이 뜨면 생물들은 태양빛을 받아 에너지를 얻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집에 있으면 다채로운 새소리가 찾아든다. 딱따구리 소리도 들리고 밤에는 밤새가 운다. 도시에서는 새소리는 아침시간만을 떠올리게 했지만 이곳에 온 이후로 모든 시간에 새가 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소리로 전원생활의 대부분을 보상받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위안을 받는다. 새는 정말 신비한 생명체다. 새소리는 주변을 북돋아주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다.


마당 한편에 심은 허브들로 드디어 고대하던 라다크 알치식 허브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조심스레 애플민트 잎을 따고 로즈마리도 한가닥 꺾어 잘 씻은 다음 컵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부었다. 설탕도 조금 섞는다. 갓 딴 생 허브티.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라다크에서 마셨던 감동을 그대로 전해받는다. 온몸에 생기가 불어넣어 진다. 심신이 치유되는 맛이다. 이거 혼자 마시기엔 너—무 아깝다. 지인이 오면 꼭 나누어 마셔야지 마음을 먹고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꼭 이 허브티를 대접한다.

생 허브티


마당에서 잡초 제거를 하다가 작고 매끈한 갈색 개구리를 발견했다. 개구리는 아주 예뻤다. 예쁜 개구리를 보면 반가워야 되는데 내 머릿속은 순식간에 먹이사슬 계보를 떠올렸다. 풀-> 곤충 다음에 나타난 것은 새와 개구리였다. 나에게 개구리의 출현은 곧 개구리를 먹이로 하는 그분(ㅂ)의 출현을 예고하는 듯했다. 이곳 경험상 먹이사슬은 철저했고 예외가 없었다. 생태계는 정직하다. 이것이 내가 예쁜 개구리를 보고 마냥 반가워할 수 없는 이유다. 개구리가 잔디 밑으로 숨어든다. 작은 잔디 속에 작은 몸이 다 가려졌다. 그분(ㅂ)을 만나지 않으려면 우리 마당에는 개구리가 보이면 안 된다.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그 길로 나는 작은 핸들 예초기를 구매하였다. 내가 우려하는 그분이 출현하기 전에 정리를 해야 했다. 나는 먹이 피라미드의 시작인 풀을 아주 짧게 자르고 부지런히 관리하는 방법을 택했다. 1차 먹이사슬을 제거 함으로써 우리 집 주변에서 상위 계체들의 출현을 막아보기로 했다.








달빛이 이리도 밝은 것이었나요.

보름달이 뜬 밤에는 밝은 불을 켜놓은 것처럼 환하다. 평소에는 깜깜하고 어둠뿐이던 마을이 훤히 다 보인다. 그 빛이 어찌나 밝은지 놀라게 된다. 본래 달빛이 이런 것이구나. 달이 이렇게 밝은 빛을 가지고 있었구나. 마치 잃어버렸던 달을 찾은 기분이다. 이제야 온전한 달빛을 만난다. 이 밤에는 달빛을 보려고 커튼을 걷는다.


사람들은 외딴 시골에 온 내가 세상, 사람과 단절을 하고 산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이곳에 와서 더 열린 세상과 만나는 기분이 든다. 오랜 시간 끊겨있던 더 중요한 자연과의 소통이 다시 연결되었다. 고립감보다는 확장감을 경험한다. 마당에서 보이는 무성한 나무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보거나 너른 하늘에 펼쳐진 구름을 한가득 눈에 담는 것, 산의 색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알아채는 것, 마당에 찾아오는 곤충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하루하루를 더 생생하게 겪고 있다. 전화기만 켜면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시대이다. 고립된 느낌은 받지 않는다. 사사로운 것에 에너지를 뺏기지 않아 단단한 일상을 보낸다. 먼 곳에서 이곳까지 찾아오는 지인과 며칠간 함께 있을 때는 어느 때보다 더 깊은 소통과 대화를 나눈다. 내 앞의 사람과 더 깊게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본격적인 여름의 기운이 드리운다. 시원한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계절이 왔다. 놀랍게도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산 바람이 시원해 에어컨이 필요가 없어서 그냥 거실에 세워두었다. 시원한 산바람으로 여름을 보내고 있다.


틈틈이 키가 자라고 있는 잔디를 손질하고 깎여진 보드라운 풀을 정리한다. 아이도 엄마를 따라 같이 풀을 들고 따라오는 모습이 귀엽다.


둘째 아이의 두 번째 생일날

집 안에서 보다는 마당으로 나가 온 자연의 품에서 축하를 해주고 싶었다. 아이는 맨발로 서서 축하를 받는다. 아가야. 세상의- 온 자연의 축하를 받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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